[야고부] “기자들은 불렀나?”

입력 2024-05-09 20:01:29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여기 성당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 있나. 오해하지 말고 들어.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소식을 열두 제자들이 미리 알고 모였어.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하늘에서 예수님이 지상으로 슥 내려오신 거야. 근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한테 했던 첫마디가 뭐였는지 알아? 기자들은 불렀나?"

20년 전 고위공무원에게 들은 얘기다. 하고 싶은 얘기를 널리 퍼트릴 수 있는 마이크 역할을 했던 언론을 잘 활용하는 게 능력이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등 여러 채널이 있지만 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기자회견이었다. 회견의 형식은 묻고 답하기가 대전제다. 하지만 압도적 흡인력이 있다면 다소 일방적이어도 괜찮다.

2시간이 넘는 일방적 토설에 가까웠지만,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회견은 근래에 드문 회견 방식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평상복 차림, 모자까지 눌러쓰고 나왔다. 겉모습은 부차적이었다. 시종일관 말을 쉬지 않았는데 알아듣기 쉬웠다. 간간이 섞인 욕설도 상스럽다기보다 억울해 팔짝 뛸 듯한 친구의 하소연처럼 들리게 했다. 일부는 2008년 나훈아의 회견을 떠올렸다. 일본 야쿠자와 연하의 여배우 이름이 뒤섞이며 퍼진 낭설이 정설로 둔갑하자 본인이 등판한 것이었다. 책상 위에 올라서서 바지춤을 잡은 건 파격적이었다.

기자회견의 본질은 항변권 확보다. 뭐든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자들을 모으지 않고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세상이다. 유명 연예인 등 셀럽들은 소셜 미디어를 십분 활용한다. 일일이 보도 자료를 뿌릴 필요가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표적이다. '홍카콜라'를 비롯한 소통 채널들을 언론이 일상적으로 주시한다. 진중권 교수에게도 한때 그랬다. 몇 줄의 메시지가 기사로 소개될 만큼 파급력이 있었다.

명확한 메시지는, 팩트만 확실하다면,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팩트만 줄줄 나열해 놔도 가독성 높은 기사가 된다는 게 언론의 오랜 신념이다. 문체와 구성 등 여러 요소로 승부하는 문학과 다르다. 대통령의 회견도 그렇다.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면 어떤 형식이든 좋다. 순도 높은 진심이면 국민들도 알아챌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