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준비 부재의 오늘이 불러올 두려운 내일

입력 2024-05-07 18:33:29 수정 2024-05-07 19:24:12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기자는 지난달 말 이강덕 포항시장을 비롯해 주요 기관장들과 함께 포항 해병1사단을 찾아갔다. 주일석 사단장은 직접 부대 현황 등에 대한 설명에 나섰는데 해병대가 보유 중인 다양한 무기·장비 체계는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우리 군의 막강한 전력뿐만 아니라 K방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우리 방위산업 역량까지 함께 보여줬다.

주 사단장은 해병대가 운용 중인 K-9자주포 등을 직접 보여주면서 K방산의 역사도 얘기했다. "전 세계에서 공군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미국이다. 미 공군도 그러하지만 미 해군도 막강한 제공권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전투기·폭격기를 가장 많이 보유해 하늘에서 때리면 됐기에 다양한 포(砲)를 개발할 필요가 적었다. 우리는 미국의 관심이 덜한 이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포를 보유하면서 세계 무기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우리 무기는 실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군비를 늘리자 K방산의 위용은 더 커졌다. 최근 기자는 여러 명의 경북 상공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방산 메카 구미는 물론, 포항·경주권에도 방위산업체가 다수 있고 이 업체들은 밀려드는 주문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K방산은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 후발 무기 수출국 가운데 대표적인 나라가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인데 이스라엘 방위산업은 외부 충격을 겪은 뒤 발전했다. 툭하면 중동 국가와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이 골칫덩이로 떠오르자 프랑스는 1967년 이스라엘에 대해 무기 금수 조치를 취했다. 영국도 1969년 무기 수출을 중지하는 등 이스라엘은 심각한 고립에 처했고 자체 방위산업 육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자주국방 완성을 내걸고 1970년대 초반부터 방위산업 육성을 진두지휘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스라엘처럼 외부적 충격을 겪지 않았는데도 독자적 판단으로 국방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든든한 한미동맹 체계 아래에서 북한의 재침이 있으면 즉각적인 전쟁 개입 인계철선이 되는 주한미군까지 주둔하고 있었는데도 불구, 박 대통령은 미군 없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고는 직접 방위산업 확대 진흥 회의를 주재하면서 방위산업 육성에 나섰다. 포스코를 비롯해 오늘날 우리나라 제철 및 금속 제련·가공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도 방위산업 육성 정책과 궤를 같이했다. 박 대통령은 방위산업이 여러 연관 산업과의 동반 성장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실제 그 구상은 현실화했다.

유럽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 러시아 충격에 휩싸였다. 결국 유럽연합(EU)은 이달 초 마침내 자체 방위산업 육성 계획을 마련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달콤한 평화, 그리고 그 기반 위에 다져진 번영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자주국방의 열매가 잘 보여 주듯이 지난 세월 치밀하게 준비된 결과물이다. 이 연장선에서 내일의 편안함은 오늘의 대비를 반드시 요구한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과연 그 길을 걷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고 나면 온갖 특검법·특별법을 만들어 국정을 책임진 정부를 때려눕히는 데 골몰하고, 국민 1인당 25만원씩 퍼 주자고 소리치는 야권을 보면 나라의 내일이 과연 어떻게 될지, 한없는 두려움이 닥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