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일본 최장수 TV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 속 짱구네 가족이 드디어 주택담보대출로부터 해방됐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극 중 유치원생 짱구의 아빠인 30대 신형만 계장은 '버블경제' 최고점인 1989년 4월, 35년 만기 대출로 우리의 수도권 신도시 격인 사이타마현에 주택을 매수했다.
'짱구는 못 말려'는 평범한 일본 4인 가구의 일상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상 콘텐츠 중 현실을 잘 구현한 작품엔 '다큐'라는 찬사가 붙는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칭찬이다. 그런데 '짱구는 못 말려'는 절대 다큐가 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 짱구 아빠가 고점 매수한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동시에 급여의 18.3%를 연금으로 내며 전업주부인 아내와 아이 둘을 부양했다는 설정 때문이다. 일본은 2004년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 보험료율을 13%에서 18.3%로 인상하는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한국의 짱구 아빠들은 어떨까?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55년 이후엔 소득 대비 35%의 보험료율을 부담해야 국민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국민건강보험 역시 2035년에는 보험료율이 9%, 2055년엔 15%~20%에 도달해야 유지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짱구가 성인이 되면 오로지 보험료로만 소득 절반을 국가에 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낸 설문에선 내는 돈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는 대신, 받는 돈을 40%에서 50%로 대폭 늘리는 안이 선택받았다. 찔끔 더 내고 더 많이 받겠다는 안이 선택받은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2093년까지 누적 적자가 현행 대비 702조 원 늘어난다. 모두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빚이다.
조금만 더 내고 더 많이 받겠다는 의견이 다수가 된 건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내 현생 문제 아니다"라고 외치는 누군가의 '알빠노' 정신에 "어차피 아이는 안 낳을 거니 상관 없다"는 젊은이들의 자포자기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 말이다.
연금 개혁 없이 재정건정성을 개선하려면 인구를 늘리는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종·성별 분야 석학인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이 수치를 접하고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정부는 지난 18년간 출산율 감소세를 반전시키려 360조 원 넘게 지출했으나 반등에 실패했다.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지금의 노년층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전후(戰後) 황폐화된 국가를 재건했다.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인구는 증가했고 경제는 성장했다.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서 주요국 대접을 받게 됐다. 그사이 민주화 혜택과 자산 증식 축복을 동시에 누린 '특정 세대' 다수는 "나만 잘 살면 돼"를 선택했다. 2030세대는 자신들을 얽매는 '그 세대'의 목줄 앞에 무기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대한민국 미래의 편에 서는 일이다.
이동재 객원편집위원(전 채널 A 기자)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4월부터 매일신문 객원편집위원으로 합류했습니다. 이제부터 기명칼럼 [이동재의 캐비닛]과 유튜브 채널 '매일신문'에서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을 통해 이동재 위원의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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