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정사상 최고의 국회의장을 꼽으라면 누구나 고 이만섭 전 의장을 선택할 것이다. 이 전 의장은 제14대 국회의장에 취임하면서 '날치기(처리)를 없애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예산안 단독 처리 요청을 거부했다.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여당의 요청을 따르지 않자 정치적 파장이 엄청났다. 그때 이후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은 국회의 관행으로 정착됐다.
원내 다수당이 국회의장을 맡지만 국회법에는 국회의장은 취임과 동시에 당적을 이탈하도록 규정돼 있다. 의장의 당적 이탈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국회에서 의장에게 합리적 조정과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과반 의석을 상회하는 절대 다수당이더라도 국회의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본회의를 열 수 없다. 2022년 4월 문재인 정부 임기 만료 전에 처리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은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회와 상정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처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로 5월 임시국회 본회의 개최 여부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2일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사기 특별법'의 표결 처리를 공언하면서 김 의장을 압박했다. 여야 합의 없이도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 수 있고 법안 상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임기 막바지에 특검이라는 정치 공세의 총대를 메는 것에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오는 4일 북·남미 해외순방 일정도 예정돼 있다. 본회의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겨주는 방안도 있지만 현재 공석이다. 민주당 출신 김영주 부의장이 공천 파동으로 탈당, 국민의힘에 입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2일 '채 상병 특검법' 처리에 김 의장이 '총대를 메라'고 압박 공세를 펴면서 인천공항에 나가 김 의장의 해외순방까지 저지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차기 국회의장을 노리는 민주당의 추미애·조정식·정성호·우원식 의원 등은 공공연하게 의장의 중립의무는 지키지 않겠다고 경쟁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들 중 누가 국회의장이 되든 22대 국회는 '이재명의 국회'가 될 것이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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