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 리뷰]'휴머노이드 로봇 콜리가 들려주는 따뜻한 휴머니즘’, 국립극단 <천 개의 파랑>

입력 2024-04-24 08:31:00 수정 2024-04-24 09:14:33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연극 '천개의 파랑'. 국립극단 제공
연극 '천개의 파랑'. 국립극단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바야흐로 연극 무대에 움직이며 동작을 만들고 인간 배우들과 대사를 주고 받는 AI로봇이 등장하는 시대다. 인형에 갑옷을 입힌 듯한 형상이면서도 지하철 역사에서 마주치는 로봇 역무원 웨이와도 닮아 있다. 극 중 인물과 교감하며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 로봇 '콜리'가 등장하는 SF연극 <천 개의 파랑>(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이야기다.

◆ SF소설, SF연극의 사이

로봇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이미 반려 로봇 강아지가 단절된 사회에서 고독사를 막아주는 가족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반려 로봇 강아지와 감정을 교감하고 위로를 받은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본의 경우 반려 로봇 강아지의 장례식이 지구촌 화제가 될 정도로, 반려 로봇 강아지와 독거노인들의 동거가 현실화 되는 추세다. 발 냄새를 맡을 정도로 후각에 민감한 로봇, AI 딥러닝과 클라우드 기술로 반려동물의 감각을 극대화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는 인간의 촉감을 인지할 수 있고, 카메라를 통한 얼굴 앞면 인식 기능을 탑재하여 카메라를 사람의 얼굴을 판별하며, 자신과 놀아주지 않으면 소리를 내고 밥까지 먹는다고 한다.

로봇이 등장하는 연극이 이상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 2013년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일본의 휴머노이드 연극 <사요나라>가 공연된 바 있다. 일본 이시구로 연구소에서 개발한 인간 여성 모습의 휴머노이드 로봇 '제미노이드 F'와 한 명의 인간 배우가 연기를 펼쳤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에게 삶을 성찰하는 시를 읽어주는 간병인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한다. 당시 공연을 관람한 김기란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관극 경험을 적었다. "정교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평이한 짧은 대화로 진행되는 <사요나라>에서 간병인이 로봇이라는 사실은 공연의 마지막에 밝혀진다. 인간과 함께 무대 위에 선 로봇은 최소한 밧데리가 방전될 때까지 제 역할을 해낸다. 로봇의 연기는 인간의 그것과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그 목소리는 함께 했던 인간 배우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느끼게 할 만큼 아름답고, 그래서 충격과 함께 야릇한 정서적 감동을 선사했다. 인간이 연기해야만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과 함께, 아름다운 소리로 시를 읽어주는 로봇에게 감정을 느끼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KAIST의 김종환 교수가 '로봇연극'을 개발했다. 로봇연극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휴머노이드 로봇, 드럼 치는 로봇, 대화를 주고받는 로봇, 청소하는 로봇 등이 등장하고 이들 로봇이 극 중 인물로 분해 센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배우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 대신 감성과 지능을 가진 자율 이동 로봇이 등장해 스토리에 따라 감정을 인지해 극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김종환 교수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되었다. 알려진 대로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천선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희곡 <왕서개 이야기>를 쓰고, 토마스 H. 쿡의 소설 <붉은 낙엽>을 각색한 바 있는 김도영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 장한새 연출은 로봇을 극의 중심적 매개로 인류의 초현실적인 현상을 다룬 <햄버거 먹다가 생각날 이야기>, <어부의 핵> 등으로 SF연극에 특화되어 있는 연출가다. 장한새 연출은 2023년 '과학기술과 예술'를 주제로 하는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부문에 선정되었고,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작인 『천 개의 파랑』을 연극 무대로 옮겼다. 7개월간의 개발 과정이 무색하게 공연 시간이 늘어나고 공연 개막이 미뤄지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연 <천 개의 파랑>은 기존 SF연극이 소재의 차원에서 소비되는 상황을 단박에 뛰어넘는 혁신적인 무대로 기록될 만하다.

과학기술과 연극의 결합을 위해 국립극단은 주제 리서치, 기술 자문과 워크숍을 통해 SF소설이 연극 무대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표현방식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작업 과정을 거쳤다. 그럼에도 개막이 미뤄지며 공연 기간이 단축된 탓도 있겠지만,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관심을 모은 <천 개의 파랑>은 무대공간과 표현기술의 한계로 휴머로이드 로봇을 내세워 SF연극의 확장된 상상력을 보여주려던 시도에 그친 감이 있다. 인간의 승부욕을 충족하기 위해 달리던 경주마 투데이의 부상과 함께 콜리의 몸도 공중으로 떠올라 부서지는 첫장면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다음 장면은 공중에 떠오른 콜리 눈에 비친 천 개의 파랑의 이미지, 그 경이의 순간을 강력하게 무대화했다. 개방적인 무대 앞 스크린으로 언리얼 엔진, 메타 휴먼, 모션 캡쳐와 가상현실이 결합되어 투사되는 영상 이미지들은 SF소설속 언어를 무대 이미지로 전환하는 흥미로운 표현방식이었다. 하지만 장편소설 속 '서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극적인 사건 혹은 선택에의 집중을 방해하고, 번잡한 동선, 압축과 생략이 부족한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동물의 복지권, 기계와의 교감 등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자체를 무화시키는 원작의 감동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서사장르인 소설을 각색하여 극장르인 연극으로 전환할 때 고민해야 할 지점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연극 '천개의 파랑'. 국립극단 제공
연극 '천개의 파랑'. 국립극단 제공

◆ 로봇과 인간의 공존, 희망적인 미래의 시대

한국 'SF연극의 역사와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인간과 미래, 연극의 미래』 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SF연극에 주목해온 전지니 평론가는 "연극이 통상 현실 사회에 대한 불안을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관련지어 표출했을 때, SF연극으로 규정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뮤지컬 제작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SF소설 『천 개의 파랑』은 인간을 통해 위로받지 못하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 로봇 콜리를 통해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불안정한 인간 내면에 내재된 분열과 불안이 거세된 듯한 명랑하고 다정한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가슴 속에도 여전히 천 개의 파랑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로봇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의 관계처럼 가장 인간적인 정서임에도 이제는 느껴보기 힘든 죽음을 불사하는 숭고한 헌신을 감각케 하는데, 그것이 SF적 상상으로 읽히기보다 현실로 투영되기 때문에 그만큼 소설의 서사가 판타지가 아닌, 10년 뒤 현실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천 개의 파랑>에서는 로봇 콜리와 인간의 관계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극 중 인물도, 경주마 투데이도, 로봇 콜리도 모두 결핍과 소외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중도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은혜(류이재 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 콜리를 대하는 전직 배우였던 엄마 보경(김현정 분), 그리고 가족보다 로봇에 더 몰두하며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를 수리하기 위해 애쓰는 연재(최하윤 분)의 가족 관계 속에서, 이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활의 편리를 위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대신, 교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인간 그 이상의 대상으로 수용하게 된다. 경주마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달리는 말 등에서 스스로 낙마해 하반신이 망가진 휴머노이드 기수(騎手)인 로봇 콜리를 실제 로봇이 연기하지만, 콜리의 내면이자 분신같은 존재를 인간 배우(김예은 분)로 설정함으로써,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연극 <천개의 파랑>이 원작소설의 재현에 갇히지 않고 연극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콜리로 분한 김예은의 연기 덕분이다. 배우 김예은은 마치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영혼을 불러들인 것처럼, 연기도 몸의 감각도 대사의 호흡과 리듬도 탁월한 집중과 몰입을 보여주었다. 콜리의 심장을 느끼게 할 정도의 훌륭한 연기였다. 원작인 장편소설의 서사를 꾹꾹 눌러 담으려 한 각색, 무대에서 그것을 연출적으로 덜어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콜리와 그 내면, 투데이의 마지막 경주에 이르기까지의 필수적인 극적 관계와 영상 이미지에 집중하고 여백을 살렸다면 어땠을까. 이야기는 많고 장면의 강조가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