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하다'. 성미나 언행 따위가 사납다는 뜻이다. 얼굴 생김새가 흉하거나 험상궂은 경우를 일컫기도 한다. 이 단어는 고약해(高若海·1377~1443년)라는 인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세종은 "이런 고약해 같으니"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고집스럽게 직언하는 신하를 총애했던 고약해에 빗댄 표현이다.
고약해는 태조부터 세종까지 4명의 임금을 섬긴 충신이다. 그는 임금이 잘못된 결정을 하면, 목숨 걸고 바른말을 했다. 그가 호조 참판 시절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다. 고약해가 '수령육기법'(지방 수령의 임기를 6년으로 정하는 법)을 놓고 어전회의에서 세종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는 지방 수령의 임기를 늘리려는 세종의 계획에 반대했다. 수령 임기가 길어지면 폐해가 크고, 그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고약해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급기야 존엄한 임금에게 "실망했습니다"라고 쏘아붙인 뒤 자리를 떠났다. 무엄했던 고약해는 그 길로 파직됐다. 그러나 세종은 1년 뒤 그를 다시 요직에 앉혔다. 고약해의 파면이 신하들의 입(충언)을 틀어막을 수 있다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 임금에 그 신하'(是君是臣)이다.
남덕우 전 총리는 현대사의 '고약해'라고 할 수 있다. '서강학파'의 대부인 그는 정부 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그를 재무장관으로 발탁했다. 과감한 기용이다. 박 대통령은 그에게 임명장을 준 뒤 "남 교수, 그간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라고 했다. 이후 남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면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이 또한 '그 임금에 그 신하'다.
집권 여당의 총선 참패로 윤석열 정부가 위기를 맞았다. 윤 대통령은 국정 쇄신과 민생 안정을 다짐했다. 그 약속을 지키려면 대통령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하다. 탕평책을 펼쳐 인재를 넓게 써야 한다. 검사 출신, 아는 사람, 회전문 인사로는 안 된다.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참모가 절실하다. 빛나는 스펙보다 지혜와 덕성이 우선이다. 윤 대통령이 국회와 협력해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을 완수하고,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면 '예스맨'(yes-man)을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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