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기 너무 힘들어" 영화관 휠체어석 직접 가보니

입력 2024-04-18 17:37:49 수정 2024-04-18 21:24:10

영화 상영 30분 직전 극장 도착했지만 '직원안내 無'
상영관 입장못해 돌고돌아, '이동식 일반좌석'은 요지부동
영화관 3사, 장애인석 '10석 중 7석' 맨 앞줄 배치
불편한 자리 뿐… "장애인에게도 좌석 선택권 있었으면"

17일 방문한 대구의 한 영화관. 상영관 입구가 제일 뒷줄 좌석과 연결돼있어 휠체어를 탑승한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민호 다릿돌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팀장이 휠체어로는 닿을 수 없는 계단 경사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독자 제공
17일 방문한 대구의 한 영화관. 상영관 입구가 제일 뒷줄 좌석과 연결돼있어 휠체어를 탑승한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민호 다릿돌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팀장이 휠체어로는 닿을 수 없는 계단 경사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독자 제공

올해로 '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 16년차를 맞이했지만 장애인들의 일상은 여전히 숨 쉬듯 일어나는 차별로 얼룩진다. 한동안 논란이 됐던 휠체어 타는 가수 강원래의 영화 '건국전쟁' 관람 실패 사연도 장애인들에겐 '이슈'가 아닌 '일상'이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영화관 휠체어석(장애인석)을 다시 들여다봤다.

17일 오후 대구 동구 율하동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지체 장애를 가진 류재욱 장애인지역공동체 이사, 이민호 다릿돌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팀장과 영화관을 찾았다. 류씨의 활동지원사인 서영흔씨도 함께했다.

영화관까지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순조롭게 도착했다. 이때가 오후 3시 30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영화 상영 시각보다 30분 일찍 온 것이다. 티켓 부스에서 장애인석 포함된 티켓을 직접 발권한 뒤 티켓에 적힌 상영관으로 향했다.

17일 대구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지체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영화표 발권을 하려고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7일 대구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지체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영화표 발권을 하려고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곧이어 당황스러웠던 광경이 펼쳐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가 도착한 상영관 입구 내부가 계단 경사로로 돼 있어 휠체어 탑승자는 입장이 불가했던 것. 이씨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며 웃으면서도 "직원들이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헛걸음을 안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가 티켓부스 직원에게 문의하니 담당 직원을 부르겠다고 했다. 5분 쯤 뒤 등장한 직원은 티켓부스 바로 옆 영화관 출구로 이어진 '장애인 이용통로'를 안내했다.

17일 방문한 대구 영화관의 장애인석. 바퀴가 달려있지 않아 성인 2명 이상의 도움이 없으면 휠체어를 탑승한 장애인 혼자서 좌석을 옮길 수가 없다. 김유진 기자.
17일 방문한 대구 영화관의 장애인석. 바퀴가 달려있지 않아 성인 2명 이상의 도움이 없으면 휠체어를 탑승한 장애인 혼자서 좌석을 옮길 수가 없다. 김유진 기자.

상영관 내부 장애인석 역시 이용이 매우 불편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된 게 아니라 '이동식 일반 좌석'을 치운 뒤 빈 공간에 휠체어를 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부 영화관은 바퀴를 달아 최소한의 편의를 꾀했지만, 이날 방문한 영화관은 좌석이 판에 고정돼 있는 형태였다. 하나의 판에 3개의 좌석이 고정된 터라 성인 남성 혼자서 밀어서는 요지부동이었다.

벌써 영화 시작 5분 전. 직원의 안내와 도움이 없어 당황하던 차에 광고가 시작됐다. 직원을 호출할 여유가 없어 활동지원사와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동식 좌석을 한쪽 구석으로 간신히 밀어냈다.

휠체어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던 류씨는 "혼자 오는 장애인들은 어떡하란 거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씨도 "다른 영화관에서는 직원들 도움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좌석 앞에 휠체어를 세워 놓고 목을 꺾어가며 영화를 봤다"고 털어놨다.

장애인석 바로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자 또 다른 불편이 시작됐다. 영화 상영 8분 만에 목이 뻐근해지기 시작한 것.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라 시야 확보가 필수인데 스크린 바로 앞 최우측 자리라 화면이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2021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3대 영화관 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이 운영하는 상영관 장애인석은 '10석 중 7석'이 이렇게 맨 앞줄에 배치돼 있었다.

60대 고령인 류씨는 육체적 피로가 더했다. 류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다가 목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관람을 포기하고 휠체어에 기대 눈을 감았다. 영화가 끝난 후 류씨는 "영화 한 편 보기도 너무 힘들다. 장애인에게도 좌석 선택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