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진 독립큐레이터
심한 일교차로 많은 이들이 감기로 고생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온이 따뜻해졌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으며,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봄이 왔다. 봄은 자연의 깨어남을 알리는 계절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이 작은 싹을 피우고,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 세상은 환희로 가득 찬다. 따뜻한 햇볕 아래 거닐며 생명력이 가득한 자연을 느끼는 이 계절은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봄이라는 계절은 우리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상기시켜주며, 희망을 안겨준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작품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화면 가득 꽃봉오리가 만개해 있다. 나무의 가지는 곡선적으로 우아하지만 쉽게 꺾이지 않을 것처럼 튼튼해 보인다. 가지 사이로 흰 빛의 분홍색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있어 작품 전체를 환하게 밝힌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꽃나무라는 소재이지만, 고흐 특유의 대담한 윤곽선, 굵고 힘찬 터치, 화려한 색채가 그림 가득 자연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가득 불어넣는다.
아몬드 나무는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다. 이른 봄에 개화하는 아몬드 나무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그의 조카인 빈센트 빌럼을 출산한 동생 테오와 그의 아내 조를 위한 선물로 그려졌다. 그의 동생 테오는 당시 생 래미의 정신병원에 있었던 반 고흐에게 편지로 조카의 출생을 알렸다. 그리고 그는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한 인물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기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 빈센트라고 짓겠다는 소식도 전했다.
애틋한 가족의 사랑을 담은 아기의 탄생은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 살던 반 고흐에게 삶의 희망을 가져다줬다. 그는 하루빨리 조카를 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장거리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조카를 보고 싶은 마음과 애정을 듬뿍 담아 캔버스 위에 꽃이 만개한 아몬드 나무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이 일을 통해 힘을 얻어 생 래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의 제작 연도인 1890년이 그가 작고한 연도이기도 하듯, 그가 그린 이름다운 꽃과 푸른 하늘이 그의 마지막 봄의 모습이 되었다.
반 고흐의 만개한 사랑을 받았던 조카는 이후 반 고흐 미술관을 설립하면서 자신이 받은 삼촌에 대한 사랑을 세상에 알렸다. 괴팍한 성격으로 말이 많았던 그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한없이 충만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혹 지금 당장 가까운 창문조차 없어 봄을 느낄 수 없다면, 반 고흐의 사랑과 생명력이 가득 담긴 아몬드 나무 작품을 보며 잠시나마 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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