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 파장 일으킨 한은 '외국인 돌봄' 보고서…노동계 "한은 규탄"

입력 2024-03-31 06:30:00

◆5일 한은 보고서 외국인 돌봄 도입해 최저임금 차등 지급 제안
◆돌봄 서비스 비용 상승으로 인해 가족들 큰 고통
◆노동계 "시대착오적", 노동부 장관 사퇴 요구

한국은행이 돌봄 서비스 비용이 크게 오르고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데 대한 대안으로 외국인 서비스를 제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행이 돌봄 서비스 비용이 크게 오르고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데 대한 대안으로 외국인 서비스를 제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동계는 고용노동부 장관 사퇴를 주장하고 있고, 양대노총이 역대 처음으로 보고서 때문에 한국은행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육아와 간병 등 돌봄 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최저임금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동시에 겨냥하면서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보고서 내용에 찬성하는 듯한 기류를 보인 이정식 노동부 장관에 대해 양대노총은 지난 28일 성명서를 통해 사퇴를 요구했다. 이 장관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한은 보고서 등을 언급하며 "한은 공식 입장이 아닌 한 연구자의 발언이고 한은 총재도 그렇게 얘기했다"면서도 "한은의 연구와 총재의 발언 취지 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목소리라는 건 존중해줘야 한다"고 했다.

또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논의와 관련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수용성 높은 결론을 낼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양대노총은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돌봄 노동자의 인건비를 삭감하고, 최저임금을 차등적용 하자는 보고서를 옹호하는 장관은 임금을 비용으로만 바라보는 시장 논리 신봉자이며 자본의 앞잡이를 자처하는 것"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앞서 지난 12일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보고서를 펴낸 한국은행 앞에서 규탄시위를 했다.

◆한국은행 보고서, 무슨 내용?

한국은행 보고서는 저출생·고령화로 돌봄노동자 공급 부족 및 비용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상식적인 진단에서 출발했다. 그 해결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공급하고, 돌봄노동자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책정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게 논쟁의 출발점이었다.

현재 돌봄서비스직 구직자수 대비 구인 수는 1.23배로 나타난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그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돌봄 인력을 고용하고자 할 때 한 달 이내에 찾을 수 있는 확률은 코로나19 이전 80%에서 최근 50%까지 하락했다.

노동공급 부족 규모는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2년 19만명에서 2032년 38만~71만명, 2042년 61만~15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2042년에는 공급이 수요의 30% 수준에 그친다.

돌봄 인력의 미스매치가 심화하면서 비용도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간병비는 월 370만원 수준으로 2016년 대비 5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65세 이상 고령 가구 중위소득(224만원)의 1.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고령가구가 간병비를 부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가사 및 육아도우미의 급여는 같은 기간 37% 증가해 지난해 월평균 264만원(하루 10시간 이상 전일제 기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원)의 50%를 상회한다. 간병비와 육아도우미료가 크게 오른 것과 달리 이 기간 명목임금 상승률은 28%에 그쳤다.

이 같은 돌봄 비용 탓에 ▷양질의 시설요양을 받을 기회가 축소되고 비용 부담 때문에 억지로 요양원을 택할 수밖에 없고 ▷여성 경제 활동이 제약을 받으며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간병이 더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저소득 계층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간병을 택하는 인구도 2022년 89만명, 2042년 212만~355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생산인구 감소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같은 기간 11조원에서 2042년 최대 77조원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에 3.6%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보고서가 낸 대안이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다. 외국인 돌봄인력을 도입하되 현재 최저임금 체계를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비용이 과다해 저소득층이 이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개인 간 직접고용 형태나 업종별 차등 방식을 둬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돌봄서비스가 타 산업 대비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가격 왜곡을 줄이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돌봄노동자 총선요구안 발표 및 투쟁선포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돌봄노동자 총선요구안 발표 및 투쟁선포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반발하는 노동계

노동계와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은행 보고서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한국노총, 민주노총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돌봄서비스 외국인력 도입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공급 부족을 외국인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실제로 돌봄 현장에서는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이게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것인지 수급 불균형 문제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H2와 F4 비자(재외동포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들은 지금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아이돌보미 등 돌봄 직종에서 일할 수 있는데 전체 1%도 안 되는 인원이 들어와 있다"며 "이주노동자들도 돌봄 노동이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도 안 들어오고 있는 상황인데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서 더 낮은 임금을 준다는 건 다분히 순진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 보고서에서 담고 있는 논의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돌봄 서비스 인력이 정말 부족한가, 인력이 부족하면 왜 부족하고 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지금 생략돼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이주노동자 차별과 돌봄 서비스 시장화 부추기는 한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책기관인 한은이 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 국내법과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 등 국제기준을 위반하는 반인권·시대착오적 연구를 추진한 것은 큰 문제"라며 "(보고서가 제시한 방안은) 노동시장과 돌봄 서비스 모두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회견에는 양대노총, 이주노조,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한은 보고서는 심각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돌봄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돌봄 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며,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최저임금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반인권적"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돌봄 가치 재조명, 관련 산업 성장, 양질의 서비스 제공, 종사자 처우 개선,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하이로드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봄에 대한 공적 투자와 처우 개선이 있어야 인력 공급도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