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경보기·쌓인 식용유…문경 화마 키운 범인들

입력 2024-03-13 18:06:05 수정 2024-03-13 21:55:28

소방청, 순직 사고 합동 조사 발표
튀김기 내 온도제어기 고장나 식용유 383℃ 이상 펄펄 끓어
사고 이틀 전, 업체 경종 꺼놔 “관계자 책임 면하기 어려울 것”

지난 2월 2일 경북 문경시 한 육가공 제조업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합동 감식반이 조사를 진행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지난 2월 2일 경북 문경시 한 육가공 제조업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합동 감식반이 조사를 진행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두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문경 육가공공장 화재는 전기튀김기의 온도제어기 작동 불량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현장에 쌓여 있던 식용유가 화마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소방청은 13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문경 순직 사고 합동 조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튀김기에 설치된 안전장치인 온도제어기가 고장 나 식용유가 발화점(383℃) 이상으로 가열됐기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 31일 오후 7시 35분쯤 문경의 육가공공장 3층 전기튀김기에서 불이 시작돼 상부의 식용유(982ℓ) 저장 탱크로 옮아붙었다. 이후 화염은 반자(천장을 가리려 만든 구조체)를 뚫고 천장 속과 실내 전체로 빠르게 확산했다.

또 사고 발생 이틀 전 공장 관계자가 화재 수신기 경종을 강제 정지한 탓에 불이 3층으로 확산한 후에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배덕곤 소방청 기획조정관은 "식용유를 이용해 가공하는 공장이다 보니 고온 환경이 형성되면서 감지기가 가끔 오작동해 비화재경보(화재가 아닌 원인으로 경보가 작동하는 경우) 방지를 위해 경종을 정지했다고 관계자가 진술했다"며 "경종이 초기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더 빨리 발견하고 신고해 일찍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방시설의 정지 및 폐쇄가 명확하니 관계자들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장 벽체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점도 불이 급속히 번진 원인으로 분석됐다.

소방당국은 공장 내부에 가연성 물질인 식용유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진압에 나선 것으로 조사돼 현장 대응체계에 허점을 드러냈다. 통상 건물 내부가 벽면으로 나뉘어 있으면 '구획 화재' 진압절차에 따라 한쪽에서 진입해 연기와 가연성 가스를 빼며 불을 꺼야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이런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배 조정관은 "대원들이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식용유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식용유는 법적으로 관리하는 위험물이 아니어서 따로 상황실에서도 내용 공유를 하지 않는다"면서 "당시 상황이 급박해 인명구조팀과 진압대가 양측으로 진입했고, 화점 확인 중 불이 번지는 것이 보이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마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소방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재난현장표준절차'(SOP)를 대원 안전 중심으로 전면 개정하는 등 대원의 안전 확보와 샌드위치 패널 등 위험 구조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