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유난히 뜨거운 말은 '시스템 공천'이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매체마다 모든 정치면은 거대 양당의 시스템 공천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사실 이 말을 듣고 떠오른 의문은 '그럼 그 전까지는 시스템이 아니라 뭐로 공천을 했다는 거지?'였다.
시스템 공천은 공천(公薦), 즉 정당이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일을 '시스템'에 따라 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스템 공천의 핵심은 공천이 대표 등 당내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개인에 의한 소위 사천(私薦)을 막아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럼 왜 시스템에 따라 공천했는데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결과에 불복종하고 탈당을 하는 등 불만을 터뜨릴까? 이 같은 사태를 보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문제를 단순히 게임에서 진 사람은 원래 다 그렇다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과에 복종하는 사람은 대인배(大人輩)이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소인배(小人輩)라는 식의 접근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게임의 규칙 자체에 결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우리말로 '체계'라고 부르는 시스템(system)이란 어떤 기능을 수행하거나 공통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일련의 규칙에 따라 상호 연결된 요소들의 집합을 말한다. 이렇게 연결된 요소들은 일종의 네트워크로서 통일된 전체를 형성하고 작동된다. 또한 이러한 방식에 따른 조직이나 기관을 지칭할 때도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흔히 사회과학에서는 일정한 원칙이나 목표가 현실적으로 배열된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시스템을 경제 질서라고도 부른다.
시스템의 정의를 통해 그 본질에 해당하는 중요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이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공정한 시스템 공천이 되려면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가? 시스템에 필요한 규칙을 만들 때 반드시 다음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규칙은 반드시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확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결정된 규칙은 게임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절대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둘째, 이 같은 사전 규칙은 반드시 만장일치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즉,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공천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참가자들이 공천 규칙에 동의해야 한다. 규칙을 정할 때 참가자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 의견을 조율해서 합의된 규칙을 만들어야만 모든 참가자가 공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규칙에 대한 합의는 단순한 과반수 결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동의하지 못한 규칙이 정해진다면 공천 결과 반드시 불공정 시비가 나올 것이다.
따라서 효율적이면서 공정하게 이끄는 규칙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개방적으로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장일치의 합의로 결정되면 이 규칙이 각 참여자에게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기본 규칙이 결정되기 전에 어떤 규칙이 누군가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만장일치의 합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칙에 따라 규칙이 결정된 후에는 각자 공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전략뿐만 아니라 정해진 규칙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참가자 각자가 공천의 승리를 위한 어떤 합법적 의사결정과 행동을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 규칙의 목적은 원래 어떤 특정한 사회적 결과를 막거나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특정인의 사천으로 논란이 되고 탈당과 창당으로 정치권이 온통 떠들썩해지면서 본격적인 선거가 치러지기도 전에 벌써 유권자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법을 만든다는 정치인들이 이토록 규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다는 것이 유권자로서 개탄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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