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6>울릉도 봄나물 이야기

입력 2024-03-15 06:30:00 수정 2024-03-15 13:19:26

발길 닿는 곳마다 식용 산채…미식가 입맛 돋우는 '봄의 맛'
부지깽이·눈개승마·서덜취…초봄이면 섬 지천에 산나물
외지인 비싼 명이 뜯어가자 채취허가제 시행 보호 조치

비어 있던 섬인 울릉도에 역사의 인적이 찾아 든 것은 1882년. 이제는 일주도로가 개통되고 공항까지 가설되고 있는 '생태문화특구'로 발돋움한 울릉도의 겨울과 하절기 전경. 울릉군 제공
비어 있던 섬인 울릉도에 역사의 인적이 찾아 든 것은 1882년. 이제는 일주도로가 개통되고 공항까지 가설되고 있는 '생태문화특구'로 발돋움한 울릉도의 겨울과 하절기 전경. 울릉군 제공
문화식객 이춘호
문화식객 이춘호

울릉도 관련 흥미로운 팩트가 있다. 여기에는 갯벌이 없다. 그래서 젓갈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 동절기에는 툭하면 풍랑주의보. 반짝 특수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른자위에는 어김없이 파고드는 스타벅스도 영화관(군청에서 주1회 영화상영 혜택을 주긴 하지만)도 없다. 울릉도 하면 오징어와 호박엿이 오랫동안 대표 특산물이었다. 이젠 아니다. 봄을 밝히는 고로쇠수액과 온갖 봄나물, 홍합밥과 꽁치물회, 호박 가공식품과 약소 등이 미식가의 혀를 자극한다.

그 시절엔 울릉도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왜적 출현 등으로 인해 오래 비어있던 섬이었다. 그 섬에 인적이 파고든다. 1882년부터다. 급기야 2018년 일주도로(44.55km)가 개통된다. 이에 앞서 2004년 포크뮤지션 이장희가 명예군민을 자청하면서 입도했고 그를 위한 '울릉천국아터센터'까지 개관된다. 그런 울릉도에 공항이 가설되고 트레킹 루트가 완비되면서 '생태문화특구'로 어필된다.

70년대 여객선인 한일호. 울릉군청 제공
70년대 여객선인 한일호. 울릉군청 제공

◆울릉도 개척사

공도(空島)였던 울릉도. 여기에 여객선이 투입된다. 광복 직후에는 태동환, 50년대는 금파호, 60년대는 청룡호, 70년대는 한일호와 동해호가 주 여객선이 된다. 포항~울릉도 편도의 경우 태동환은 무려 18시간, 금파호는 16시간, 월 4차례만 운항하는 청룡호는 11시간, 한일호는 8시간쯤 걸렸다. 1995년 8월부터 썬플라워가 취항한다.

개척령 이후 울릉도로 입도한 주민들은 초근목피의 나날을 감내해야만 했다. 북쪽에서는 명이를 넣은 '명이밥', 남쪽 통구미 등지에서는 해초 일종인 대황을 넣은 '대황밥'을 즐겼다.

소금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자염을 만들 듯 드럼통에 바닷물을 넣어 소금을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육지와 달리 염장 음식이 풍부하지 못했다. 염장 음식에 이용되는 치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곧 작은 물고기들은 바다의 뻘이나 바닥에서 자라지만 울릉도 근해는 심해로서 치어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척박하기만 했던 초기 정착민의 주린 배를 살려주었던 명이나물. 울릉농업기술센터 제공
척박하기만 했던 초기 정착민의 주린 배를 살려주었던 명이나물. 울릉농업기술센터 제공

◆눈물겨운 명이인문학

한겨울 지붕만큼 쌓인 눈은 봄까지 남아 농사도 척박지게 만들었다. 섬의 보릿고개는 유달리 더 길고 질겼다. 이렇게 주민들이 굶주려 목숨 부지하기 어려울 때 찬 눈을 헤집고 남 먼저 돋아나는 반가운 봄나물이 명이나물이다. 보리싹과 비슷했다. 그 나물이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웠던지 사람들은 '목숨(命)을 이어준다'는 뜻으로 '명이'라고 부른다. 울릉도에선 명이를 '맹이'라고 발음한다.

명이는 크게 두 종류. 잎이 피어나기 전에 채취한 건 '뿔명이', 잎이 완전히 자라 잎이 펼쳐진 명이는 '잎명이'. 나리분지에 옮겨와 사는 외지 정착민인 김옥선 씨의 경우 울릉도에서 처음으로 밭에서 키운 명이나물 시대를 연다. 이 명이가 육지로도 진출했다. 1994년 울릉도에서 반출되어 현재 강원도와 경북 영양, 그리고 팔공산 능성동에 있는 베이커리카페 블루마운틴 옆에도 재배되고 있다. 특히 대구는 명이장아찌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 주역은 1998년 수성구 지산성당 옆에서 오픈했다가 지금은 들안길로 진출한 용지봉 한정식이다.

◆명이나물 희비쌍곡선

수요가 폭증하자 명이 값도 천정부지. 그 때문에 온갖 폐단이 발생한다. 너나없이 보이는 대로 남획한다. 육지 채취꾼까지 원정 와서 뿌리째 캐갔다. 군락지도 많이 훼손되었고 채취인이 추락해 죽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사람의 명을 이어주던 명이가 지금은 되레 사람의 명을 재촉하기에 이른다.

울릉산림조합에서는 2010년부터 명이채취허가제를 시행해 외지인의 채취를 막기 시작한다. 명이 보호를 위해 채취기간을 3월 15일부터 4월 말까지로 제한하기도 했다. 명이를 뜯을 때 줄기를 끊지 말고 잎 두 개 중 하나만 뜯도록 지도하는 한편 잎만 끊을 수 있는 반지모양의 칼도 나눠준다. 잎을 모두 따내거나 줄기를 끊어버리면 명이가 다시 자라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

품귀현상을 일으켜 지금은 상당수 명이가 밭에서 인공적으로 재배돼 채취된다. 울릉농업기술센터 제공
품귀현상을 일으켜 지금은 상당수 명이가 밭에서 인공적으로 재배돼 채취된다. 울릉농업기술센터 제공

◆관리되는 산나물 인프라

울릉도는 봄에는 산채, 여름철에는 오징어와 꽁치, 가을~겨울에는 해초류가 좌장구실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산채가 독주한다. 오징어보다 나물 벌이가 세 배 정도 낫다.

초봄. 울릉도에선 굶어 죽을 염려가 없다. 손을 내밀어 확보할 수 있는 식용 산채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참고비(섬고사리), 깨치미(고비), 눈개승마(삼나물), 울릉미역취(취나물), 서덜취(곤데서리), 독활(땅두릅) 부지깽이(섬쑥부쟁이), 엉겅퀴, 명이(산마늘), 전호 등이다.

4~5월 각종 나물을 삶아 말리느라 집집마다 산채용 콘크리트 솥이 24시간 버전으로 움직인다. 다른 농촌에서는 가을이 바쁘다고 하지만 울릉도는 봄날이 '농번기'. 일명 '봄걷이'다. 봄을 알리는 복수초 같은 전호 나물로 시작해 참고비, 9월초 미역취 2차 수확이 끝나면 울릉도 산채 농사도 대충 끝이 난다. 물론 첫 신호탄은 고로쇠수액이다.

대중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부지깽이와 미역취는 울릉도 산나물 중 봄에 2번 채취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나물은 전호나물이다. 상당수 밭에서 재배되지만 아직 야생에 의존하는 건 전호나물, 엉겅퀴, 곤데서리, 명이나물, 고사리 등이다. 엉겅퀴의 경우 육지는 가시가 많고 억세 못 먹지만 울릉도는 부드러워 잘 팔린다. 울릉도 육개장에는 산나물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육지에서는 대파와 무를 이용하지만 여기선 나물이 주로 사용된다. 주당들은 부지깽이나물로 해장용 된장국을 끓인다.

동산 가득 나물밭인 울릉도의 봄. 나물 채취 주민의 자태가 꿋꿋한 기운을 자아낸다. 울릉농업기술센터 제공
동산 가득 나물밭인 울릉도의 봄. 나물 채취 주민의 자태가 꿋꿋한 기운을 자아낸다. 울릉농업기술센터 제공

◆산채특화단지도 만들고

자색 식물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 울릉군은 2002년 '울릉군 원색 식물도감'을 펴낸다. 이때 600여 종의 자생식물과 50여 종의 귀화식물이 입체적으로 갈무리된다.

갈수록 산채 수요가 폭증하자 울릉군은 80년대 후반부터 눈개승마를 인공재배한다. 90년대는 울릉섬고사리와 고추냉이, 2004년에는 나리분지를 중심으로 명이를 집단재배하게 된다. 2000년대 후반에는 섬엉겅퀴도 보급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현재 350~400개 농가가 산채를 출하하고 있다. 2008년에는 한국경영분석연구원이 울릉도를 산채의 메카로 조성하기 위해 '울릉도 산채와 녹차 특화단지 조성방안 연구 용역'을 낸다. 현재 저동 1~3리는 더덕, 사동 1~3리는 부지깽이, 남양 1~3리는 부지깽이, 태화 1~2리는 미역취, 북면 현포 1~2리는 미역취, 천부 1~4리는 더덕, 나리동은 명이나물이 주인 나물격이다.

2004년부터는 가파른 경작지를 고려해 농사용 모노레일을 도입했다. 원산지 보호를 위해 울릉군 산채 4종(삼나물, 미역취, 참고비, 부지깽이‧출하는 울릉농업협동조합)에 대한 지리적표시제도 획득했다.

독도새우
독도새우

◆현지 음식 이야기

스토리가 있는 두 식당이 기억난다. 도동항 근처 '구구식당'은 울릉도에서 '약초 해장국'을 맨 처음 소개했다. 여긴 특이하게 물엉겅퀴와 토란이 들어간다. 요즘은 오징어내장탕도 인기인 모양이다.

나리분지 내 명물식당은 단연 '나리촌식당'이다. 김치 같은 약초 겉절이, 삼나물 숙회무침, 부지깽이 나물전, 더덕 장아찌, 쌉싸름한 엉겅퀴 해장국으로 연결되는 산채정식. 그리고 '나리발 동동주'로 불리는 '씨껍데기술'는 천궁, 더덕, 호박, 마가목 등에 누룩을 입혀 만든 건데 발음 때문에 관광객들 사이에 웃음을 자아낸다.

이밖에 오징어누런창찌개, 따개비칼국수, 그리고 꽁치물회, 대황김치, 독도새우까지 맛을 본다면 토박이 정서를 웬만큼 이해할 수 있다.

도동항이 홍합밥이라면 저동항으로 가면 오징어내장이 들어간 오징어누런창찌개를 맛봐야 한다. 저동항에서는 오징어내장탕이 인기다. 기본 내장으로는 오징어누런창찌개, 알과 정소로는 내장탕을 끓인다. 이건 동절기 뱃사람의 해장국이다. 하절기로 들면 한국 4대 물회(포항물회, 제주 자리물회, 장흥 된장물회, 울릉도 꽁치물회) 중 하나인 꽁치물회가 속을 풀어준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손으로 잡는 손꽁치가 제격이었다. 그걸 갖고 수제비를 빚어먹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비싼 독도새우는 서해안 발 일반 새우와 격이 다르다. 그 삼총사를 알고 가자. 가장 살이 단단하고 비싼 무늬가 복숭아꽃처럼 생긴 도화새우, 그리고 물렁가시붉은새우와 가시배새우이다. 현지에서는 꽃새우와 닭새우로 불린다. 도동항 근처에서는 먹기 힘들다. 원조급은 저동항 '천금회수산', 후발주자는 사동항 '비치본회센터'. 대구에선 들안길 '후포수산'에 가면 맛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