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황병우 호(號)의 상생금융

입력 2024-03-06 17:23:27 수정 2024-03-06 19:48:00

최창희 편집국 부국장
최창희 편집국 부국장

지금도 그렇겠지만 30년 전, 대구은행 입사 면접은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대구은행맨이 되려면 몇 단계의 힘든 관문을 거쳐야 했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물병·칼·거울·나침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지' 각자 정하고 서로 설득해 최선을 도출하는 집단 면접은 정답이 없는 터라 무척 생소했었다. '내 선택을 우겨야 하나, 다른 이의 주장을 수긍해야 하나' 논리력을 시험하는 것인지 소통과 설득, 리더십을 보자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압권은 최종 면접(행장)에 앞서 치러지는 부서장 면접이었다. 영화 '아수라' 촬영지로 유명한 대구은행 대강당에서 열린 면접은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운동장처럼 큰 면접장 커튼 뒤에 대기하던 본선 진출자(?)들은 호명하는 순서대로 긴 통로를 모델처럼 걸어서 자리로 가야 했다.

당시 유행했던 '압박 면접인가?' 얼떨결에 지원했던 기자가 운 좋게 합격한 후에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앞산 연수원 시절. 비로소 교육 담당 선배로부터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바르게 걷는 자세를 통해 능력이나 패기는 물론 인성과 소통 등 기본에 충실한지 판단한다는 답이었다.

최근 황병우 대구은행장이 DGB금융그룹 새 회장에 내정됐다. DG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이달 2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황 행장을 이사회에 추천·통과하면 비로소 회장 선임이 최종 확정된다.

행원 면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황 행장에게는 "그룹과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다 우수한 경영 관리 능력을 겸비했고, 시중은행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가 따른다.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새 회장에 오르는 황 행장 앞에 놓인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대구은행이 이름까지 'iM뱅크'로 바꾸고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면모를 일신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1967년 국내 1호 지방은행으로 출범한 대구은행이 설립 57년 만에 시중은행 전환에 성공하면,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2년 만에 탄생하는 시중은행이 된다.

물론, 시중은행 전환은 지난해 7월부터 사업·재무계획 등을 준비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중은행 전환 이후다. 덩치가 몇 배나 큰 대형 시중은행들과의 경쟁도 벅찬 데다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케이뱅크 뒤를 잇는 제4 인터넷은행 설립 예고 등 은행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인 만큼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비은행 계열사 수익성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해 56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2억원으로 전년(616억원) 대비 99.5%나 감소했다. 불법 계좌 개설 등 부정적인 이미지도 씻어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때부터 '상생금융'을 강조해 오고 있다. 은행들도 앞다퉈 이자 감면 등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DGB 입장에서는 시중은행 전환이야말로 상생금융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다. 시중은행 전환으로 5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이 과점 중인 은행권에 금리 경쟁이 촉진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다. 영업 구역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져 소비자 금리 부담도 그만큼 낮출 수 있다. 나아가 기존 금융권의 서비스 혁신까지 이끄는 이른바 '메기 효과'를 낸다면 진정한 상생금융에 부합될 것이다. 황병우호(號)가 기본을 충실히 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