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돌아온 일본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입력 2024-02-18 18:35:05 수정 2024-02-18 18:38:01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지난 16일 3만8천400선을 돌파하며 '버블 경제' 이후 34년 만에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1989년 말 3만8천915까지 올랐다가 2009년 3월 7천54로 추락했던 니케이지수는 연내에 지수 4만대 진입, 2년 후 5만~5만5천에 이른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버블 경제 당시 일본은 '무너지지 않는 신화'의 나라였다. 그러나 '주가 신화'는 1990년 새해 벽두 붕괴했고, '부동산 신화'는 1991년 가을 하락세를 시작으로 1990년대 후반 바닥을 확인할 수 없는 지경이 됐으며, '금융기관 신화'는 1997년 11월 산요증권과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 파산에 이어 4대 증권사 중 하나인 야마이치증권의 도산으로 산산조각 났다. '잃어버린 10년'은 20년, 30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런 일본 증시의 부활은 엔저와 수출기업 실적 개선이 바탕이 됐다. 특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해 6월 가계소득 증대를 목표로 일본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인 NISA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대폭 늘렸고 비과세 적용 기간도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지난달 4~19일 개인 매매 거래량은 28조7천억엔으로 지난해 1월 한 달 거래량(24조7천억엔)을 훌쩍 넘겼다. 1월 9∼12일 해외 투자자 순매수액은 9천557억엔(약 8조6천억원)으로 집계됐다. 2013년 3월 이후 최고치다.

아베 신조 전 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베는 '일본 재흥 전략'(Japan is back)을 통해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와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투자자나 주주가 취해야 하는 행동 원칙, 거버넌스 코드는 투자받는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 원칙이다. 기업은 자본 축적에만 매달리지 말고 적극적 주가 부양에 나서고, 주주들은 이를 감시하고 개선을 요구하라는 취지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거래소그룹(JPX)은 저평가 기업들에 강력한 개선책을 요구했다. 덕분에 3월 결산 일본 상장사 배당액은 사상 최대치가 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월 결산 일본 상장사 2천350곳의 배당 예상액이 15조7천억엔(약 144조원)이라고 전했다.

주식시장을 자본주의의 꽃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 주식시장은 시든 꽃이다. 한국 증시에서 장기 투자는 바보라는 말까지 나돈다. 이 때문에 미국 S&P500과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에 돈이 몰린다. 이런 가운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당연시된 우리나라도 혁신에 나선다. 정부는 이달 중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숙제는 산더미다.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 환원을 늘리는 게 핵심이지만 정부 정책의 변동성, 수익성 제고와 무관한 기업의 의사결정, 복잡한 기업 지배구조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도 과제다.

주가 부양은 단순히 기업 저평가 해소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안정적 투자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바꿔야 한다. ISA와 연금저축 계좌를 활용한 투자를 기반으로 중장기 자금 계획을 세워 흔들리는 연금제도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으며, 경제적 불안감을 상쇄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치고 빠지는 식의 한탕주의가 아니라 장기적 투자를 통해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획기적 정책이 40% 평가절하된 한국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