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강은경] 바람이 지나간 자리

입력 2025-04-20 15:03:51 수정 2025-04-20 15:45:34

강은경 사회부 기자
강은경 사회부 기자

바람은 보이진 않지만 그 존재감은 강렬하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22년 대구시장에 취임한 첫날, 공무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스쳐가는 바람'이라 했다고 한다.

"대구시청의 주인은 여러분이다. 주인이 잘할 때는 봄바람이 될 것이고, 잘 못할 때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고 했던 그는 지난 11일 '6·3 대선' 출마를 위해 대구시장직을 사퇴했다.

대구는 지난 2년 10개월간 유력 대권 주자라는 그의 강렬한 존재감과 정치적 중량감을 보유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이슈를 선점하고 중앙에 어젠다를 먼저 제시하기도 하면서 대구 시정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아 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분석 사이트인 '빅카인즈'에서 2022년 7월부터 '대구시장'을 키워드로 분석했더니, 관련 기사가 5만83건에 달했다. 직전 민선 7기 4년간 관련 기사가 3만4천501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의 의미는 단순 수치 이상으로 클 것이다.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마주한 요즘 대구 시민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대구경북신공항, 취수원 이전, 대구경북 행정통합 등 대부분 대형 현안들이 중앙 정치권, 중앙 부처와 직결된 까닭에 시장의 구심점 부재가 추진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대구 시정을 책임지게 된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에게 거는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김 권한대행이 대구시 기획조정실장까지 거친 만큼 누구보다 대구 현안에 능통하고, 중앙 부처 인맥도 넓어 시정 공백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선출직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는 임명직 공무원인 김 권한대행의 과감한 추진력과 적극성 면에서는 우려도 없지 않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시민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힘을 얻는 선출직 시장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무(無)당적 수장'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도 만만찮은 과제다. 모든 현안을 중립적 시각에서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치적 중립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우군'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향후 조기 대선 결과에 따라 새 정부와의 관계도 어떤 식으로 설정해야 할지 아직은 모두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김 권한대행이 홍 전 시장 체제에서 그동안 벌여 놓은 사업들에 대해 연속성을 갖고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홍 전 시장의 공약은 대구시가 시민들과 약속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기존의 안정성에만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변화를 꺼리는 관료주의 분위기가 만연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구 시정은 긴장감이 급속도로 떨어져 행정의 난맥상을 노출할 위기 상황도 예측된다.

필요하다면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과감한 조직 개혁과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은 물론 지역 경제계와 산업계, 의료계, 문화예술계 등 각계각층과 만나며 시정 운영의 지혜를 빌리고, 민심과의 거리도 빠르게 좁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정치권도 어느 때보다 김 권한대행 체제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이를 토대로 핵심 현안에 긴장감과 속도감을 부여하고, 대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혁신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구시가 오늘 무슨 발표를 할까?' 시민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대구 시민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는 이제 대구시 역량에 달렸다. 새바람에 대한 지지도 비판도 온전히 대구 시민들의 몫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