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세계 전기차 시장 30%대 성장…업계 중저가 모델 출시 돌파구 마련
중장기 성장세 유지 전망, 충전 인프라 확대 및 소비자 혜택이 관건
친환경차의 대표주자 전기차 전환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전기차 보급을 늦추는 '속도조절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는 "바이든 행정부가 자동차 업계와 노동조합의 요구대로 전기차 도입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발표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인프라 구축과 공장 설립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자동차 업계 노동자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에 진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캐즘은 첨단 기술 제품이 대중화되기 이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떨어지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전기차 산업이 캐즘을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전기차 업계 동향에 관심이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수요 둔화 언제까지 이어지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대다수의 산업이 역성장을 거듭했으나 전기차 시장은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내연기관차 거래는 감소한 반면 전기차 수출입은 증가세를 보였다. 친환경차 전환을 위한 정책 보조금 지급, 디지털 전환 및 탄소중립 중심의 소비 트렌드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 팬데믹 기저효과가 감소하고 고금리로 인한 경기침체가 현실화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게다가 전기차 보급을 견인해왔던 보조금 정책도 축소되면서 전기차 시장이 캐즘에 진입했다는 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전문 조사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총 대수는 1천377만대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작년 상반기 전망치에 비해 100만대 이상 감소한 수치다. 성장률은 36.4%에서 30.6%로 하향 조정됐다. 이는 2017년 이후 평균 성장률(54.6%)를 밑도는 수준이다.
에너지 및 광물 가격 변동,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 설비 투자 지연 등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많은 만큼 올해도 수요 둔화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SNE리서치는 "2021년에 세 자릿수 성장률, 2022년에는 60%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던 전기차 시장은 2023년 성숙기에 들어 단기적으로 30% 정도 성장에 머물렀다. 2024년 역시 20% 전후로 전보다 다소 더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저가형 전기차 보급의 원년
전기차 보급의 장벽은 단연 높은 가격이다. 그동안 자동차 업계는 1회 충전 당 주행거리를 늘리는 등 성능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왔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비교했을 때 고가의 제품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우는 기업이 늘었다. 향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제품의 출시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친환경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글로벌 톱3'를 유지했다. 올해 현대차·기아는 중저가 전기차 제품을 출시해 확실한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경차 시장의 부활을 알린 캐스퍼 전기차 모델인 '캐스퍼 일렉트릭'(가칭) 올 하반기 내놓을 예정이다.
기아는 소형 전기차 SUV 모델인 EV3와 준중형 전기 세단 EV4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콘셉트카를 공개해 화제가 됐던 라인업이다. 가격은 3만5천 달러부터 5만 달러 수준으로 책정해 보조금 혜택을 더하면 3천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기차 분야 선도기업인 테슬라도 새로운 저가형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새로운 저가형 전기차 개발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 기업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됨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보급형 모델 출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위기 혹은 기회
전기차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뚜렷하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NEF)는 '무공해 자동차 연간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산업이 지속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오는 2040년 전기차 비중이 40%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 NEF는 "보조금을 축소하는 선진국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꺾였으나 인도, 태국 등에서는 저가형 전기차 판매가 확대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또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환경 정책도 전기차 확대에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며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설립된 전치가 및 배터리 제조 설비가 하반기 가동을 시작하면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신년회를 전기차 전용공장에서 개최하며 전기차 전환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올해는 그룹 최초의 전기차 전용공장인 오토랜드 광명에서 여러분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곳에서 출발해 글로벌로 이어지게 될 전동화의 혁신이 진심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 전기차 수요는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7~8월 최저점을 찍은 전기차 판매 대수는 9월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KAMA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 보조금을 일정기간 유지할 필요가 있고, 충전인프라 고도화, 운행단계 소비자 혜택 확대 등의 정책적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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