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의료계와 정부가 어느 때보다 팽팽히 맞서고 있다. 4년 전과 같이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맞설지, 그럼에도 정부가 '2천 명' 증원을 끝까지 밀고 가거나 증원 규모를 축소하는 선에서 양측이 타협점을 찾을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 가장 큰 이유는 '필수의료 살리기'다. 여기서 '정원 확대'라는 비슷한 길을 걸어온 간호사들의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년째 정원이 묶인 의대와 달리 간호대는 그동안 정원이 꾸준히 늘었다. 간호대는 2008학년도 1만1천686명에서 2023학년도 2만3천183명으로 정원이 2배 정도 증가했다. 여기서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 간호대 입학 정원을 1천 명 더 증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정원 확대와 더불어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간호 인력 부족'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현장 간호사들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지적한다. 간호 인력 부족이 매년 배출되는 신규 간호사가 적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의 처우는 이들이 현장에서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더디게 개선됐다. 간호사 한 명이 감당하기 벅찬 환자 수, 화장실에 가거나 식사하기도 쉽지 않은 근무 환경,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급여 등 현장의 어려움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장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신규 간호사만 양성한 결과는 뻔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었다. 신규 간호사들이 계속 유입됐지만 곧 병원을 떠나는 일이 반복됐다. 간호사들은 '힘들어서 버틸 수 없다'고, 병원은 '일할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의사들이 인기 진료과목으로 몰린 것처럼, 상당수 간호사들은 '탈임상'을 목표로 삼았다. 간호사로선 답이 안 보이는 현실에,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의료 현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시점에 의사 수 확대가 꼭 필요하다면,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차원의 대책 마련에 그쳐선 안 된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하거나, 특정 직역 단체와 합의점을 찾는 데만 급급해 엉뚱한 대책을 내놓아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진료과목별·수도권 쏠림 등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기에 앞서 정부는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의대 정원 조정은 이공계 이탈, 재수생 양산 등 각 분야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환자 생명과 결부된 진료과목일수록 수익이 낮은 왜곡된 수가 체계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인 면허를 아무리 찍어내더라도 필수의료 현장엔 남을 사람이 없을지 모른다.
의료계 역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투쟁을 반복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그동안 의료계는 파업, 동맹휴학 등을 정부 정책에 맞서는 수단으로 써왔다. 그때마다 필수의료를 둘러싼 본질적인 논의는 묻히곤 했다. 의료 정책의 굵직한 국면마다 국민들이 큰 피로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이번에도 환자 생명을 담보로 정부와 협상에 나선다면 앞으로 이들의 행보도 '밥그릇 싸움' '직역 이기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수가 체계 등 필수의료 시스템 전반을 개선할 기회로 삼는다면, 이들의 목소리가 의료계의 진정성 있는 호소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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