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 동료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자신만의 선행이 안줏거리로 올랐다. 선행은 남 몰래 하기 마련이어서 교류가 제법 잦아도 알기 힘든 것들이었다. 10년 넘게 개발도상국 집 짓기 후원, 사후 장기 기증 약속, 어린이 암 병동에 상금 기부 등이 찬탄 속에 소개됐다. 좌중의 정신이 번쩍 드는 자백들이었다.
논어 술이 편은 "세 사람이 길을 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고 일러준다. 배우려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좋은 걸 알아채고 긍정적으로 발현하려는 힘이다. 일회성이라 해도 유명인들의 선행은 '선한 영향력'으로 대중에 전달된다. 동참 의지를 북돋우는 것이기에 언론이 더 크게 다룬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설 연휴 직전 연탄 나눔 봉사활동에 나섰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정치 쇼를 한다고 저격했다. 그의 얼굴에 묻은 숯검정을 가리켜 '연탄 화장'이라 했다. "옷보다 얼굴에 먼저 연탄 검댕이 묻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봉사활동 한답시고 인증 사진만 찍고 가 버리는 악습이 우려됐을 법하다. 설 연휴 밥상 민심에 '정치 쇼 하다 망한 한동훈'이 회자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연탄 나눔이 담긴 영상에는 봉사활동 관계자들이 장난치듯 검댕을 묻히는 장면이 나왔다.
무엇보다 설 연휴 민심의 눈은 정치 영역에 있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클린스만 감독이 있었다. 아시안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까지 갔지만 그를 향한 원성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혹평이 범람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원격 업무 등이 일상이던 그를 '게으른 스승'으로 판정해 버린 것이다.
아시안컵 직후 적어도 며칠은 우리나라에 머물며 대회 평가 등을 할 거란 예상도 깨 버렸다. 이틀 만에 자신의 집이 있는 미국으로 갔다. 얼마나 우리를 가볍게 보면 이러나 싶은 모멸감마저 더해져 여론은 악화일로다. 위약금을 물지 않고 내보내는 방법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유한다. 여론 읽기 귀재라는 정치인들도 그의 거취를 논한다. 우민(愚民)이 득시글한 곳에서는 현자도 말솜씨 좋은 약장수 취급을 받는다지만, 이쯤 되면 그를 임명한 대한축구협회의 해명과 결단이 뒤따라야 마땅한 시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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