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가족·회사 잃고 닥친 병마…오늘도 누운채 천장만 바라봐

입력 2024-02-13 06:30:00

무작정 배운 인테리어 기술…회사까지 차렸지만 '가출' 사유로 이혼당해
사업도 손해만보다 결국 부도…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전락
70대 들어서면서 건강 점점 악화…유일한 벗 도움으로 힘겹게 버텨

지난 8일 여러 병으로 고된 삶을 살고 있는 박병욱(76) 씨가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8일 여러 병으로 고된 삶을 살고 있는 박병욱(76) 씨가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윤정훈 기자

오랜 벗은 내 삶을 엮은 한 편의 수필과 같다. 부모보다 더 오래, 자식보다 더 일찍 내 삶을 나누는 소중한 존재. 박병욱(76) 씨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제대로 얘기도 못 할까 봐 걱정돼서 왔다."

한달음에 찾아온 병욱 씨의 오랜 벗이 말했다. 폭이 좁아 차라도 맞닥뜨리면 피할 곳 없는 시골 도로를, 불편한 다리로 부단히 걸어왔을 테다. 제 집처럼 털썩 앉는 벗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병욱 씨. 가족도, 회사도, 이젠 건강마저 잃은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가난·이혼·회사 부도…볕 들 날 없던 지난 삶

병욱 씨의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논에서 일하고 받은 품삯으로 5남매를 키웠다. 벌이는 불안정했고, 형편은 늘 어려웠다. 무너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을 바라보며, 병욱 씨는 어린 시절부터 '좋은 집'을 동경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건축 관련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농업고를 졸업했다. 병욱 씨 고향에 고교는 농업고 하나뿐이었다. 이후 대구에서 재수학원까지 다니며 가고 싶었던 대학 시험을 치렀지만 낙방했다.

이후 고향과 대구를 오가며 열심히 일자리를 찾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고향에서 빌린 땅에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26살엔 어른들 소개로 1살 많은 아내와 결혼해 부모님을 모시며 살았다.

아들 둘과 딸 하나도 태어났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모님이 연로할수록, 병욱 씨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농사만 지어선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30대 초반에 홀로 버스를 타고 대구로 왔다.

예전부터 머리 속에 있던 인테리어 사업에 도전해볼 요량이었다. 7~8년은 무작정 인테리어 업자들을 따라다니며 집 수리부터 도배, 장판 시공 등 여러 기술을 익히는 데 전념했다.

30대를 다 바친 병욱 씨는 작은 인테리어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기쁨도 잠시, 2년 뒤 아내에게서 이혼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유는 '가출'. 의도가 어떻든 10년 동안 가정을 돌보지 못했다. 아내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붙잡을 수 없었다. 그 길로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 남은 건 회사뿐이었다. 다행히 병욱 씨의 꼼꼼한 성격은 이 일과 잘 맞았다. 소규모였지만 직원 8명을 둘 정도로 회사는 성장했다. 열심히 운영하던 회사는 60대 중반에 문을 닫아야 했다.

병욱 씨의 착한 심성이 사업에선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했다. 의뢰인의 뜻대로 우선 자재비만 받고 착공했다가 남은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손해들은 쌓이고 쌓여 회사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신장투석도 벅찬데 폐암 의심 소견까지

병욱 씨에겐 가족도, 회사도 남지 않았다. 값싼 월세방에서 홀로 살며 생계수단을 찾아 헤맸지만 60대 중반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전락한 병욱 씨. 그에게 남은 건 '건강'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위협받기 시작했다.

70대에 접어든 병욱 씨는 어느 순간부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의사는 '콩팥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혈액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후 가까운 요양병원에 입원해 2년 간 투석 치료를 받았다. 병원비로 210만원 정도가 나왔다. 다행히 병욱 씨의 곤란한 사정을 알게 된 친구 손중길(가명·77) 씨가 병원비를 대신 내줬다.

중길 씨는 병욱 씨가 재수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다. 병욱 씨의 사업이 힘들 때도 3천700만원을 빌려주는 등 든든한 친형 같은 존재였다. 이번에도 중길 씨는 경북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욱 씨를 데려와 그를 돌봤다.

하지만 중길 씨의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3층이었고, 병욱 씨의 건강은 혼자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병욱 씨는 지인인 목사 소유의 1층짜리 단독주택으로 거처를 옮겨 지난해 12월부터 살고 있다. 월세 30만원으로 들어갔지만, 중길 씨에게 빌린 돈으로 겨우 처음 한 달 월세만 내고, 그 이후론 한 번도 내지 못했다.

가뜩이나 힘든데 또 다른 병마가 덮쳤다. 지난해 11월부터 부쩍 숨 쉬는 게 버거워진 병욱 씨는 대구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폐에 작은 혹이 11개나 생겼고, 폐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여러 검사를 거쳐야 한다. 병욱 씨는 지금까지 두 차례 검사를 받았다. 지난달 한 번 더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건강 악화로 도저히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욱 씨는 다음 주 마지막 병원 방문을 앞두고 있다. '폐암일까, 아닐까', '치료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월세는 어떻게 내지….' 여러 걱정이 병욱 씨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가장 괴로운 건 홀로 아무것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병욱 씨.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오랜 벗, 중길 씨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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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 생계, 화재로 집 잃은 도혜주 씨에게 2,377만원 전달

전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생활고 시달리다 이혼 후 아들과 힘겹게 살아가는데 최근 화재로 집 잃은 도혜주 씨(매일신문 1월 30일 10면 보도)에게 2천377만8천566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한국서가협회대구지회 50만원 ▷영남미술대전(최병국) 2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배영철 2만원 ▷신종욱 2만원 ▷이재숙 2만원 ▷홍준표 2만원 ▷남장호 1만원 ▷이장윤 2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타국에서 낳은 아이 호흡 곤란으로 막막한 픽운 씨에게 2,019만원 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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