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입력 2024-02-08 15:00:33 수정 2024-02-08 18:53:04

홍준표 기자

홍준표 기자
홍준표 기자

붉은 지붕의 베이지색 건물을 배경으로 검은 양복에 모자를 쓴 남자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어찌 보면 이들은 공중 부양을 한 듯하다. 빗방울처럼 공중에 떠 있는 남자들을 보노라면 무언가를 박탈당한 인간 군상이 부유하다 도시의 거리로 투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신비하고 환상적이다. 현실을 비틀어 보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1953년 작품 '골콩드'에서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을 실현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생뚱맞은 곳에서 등장하는 갖가지 일상적 사물을 보면 관람자는 당황함과 함께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러한 기법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한다.

데페이즈망의 상상은 '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상식이 당연하지 않다는 상상으로 현실을 파괴한 창조를 하고, 창조를 통해 자유를 맛본다. 전화기가 한곳에 고정되어 있다는 상식을 뒤집는 상상이 휴대전화를 낳았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전화기이기를 거부한 데서 스마트폰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상식의 전복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인간사에 끔찍함을 가져올 때도 있다. 예술가를 꿈꿨던 아돌프 히틀러의 비틀어진 망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는지 우리는 안다.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지 못함은 때론 아픔도 남긴다. 대개 하루 일을 마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 화재 현장에서 인명 검색과 구조에 나섰던 김수광·박수훈 소방관은 그러지 못했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끝내 퇴근하지 못한 아들의 근무복을 가슴에 끌어안으며 "못 보낸다, 가지 마라 내 새끼"라고 오열했다. 그들이 없는 곳에서 홀로 빛나던 특진 계급장과 훈장은 자못 쓸쓸해 보였다.

있어야 할 게 없어서 마음이 불편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방관이 메는 산소통의 무게는 20㎏이다. 그 무거운 장비를 메고 시뻘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생명을 구한다. 그 사명감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에 국가가 그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고, 유족에게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소방 당국은 순직자 예우에 소홀했다. 지난해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식'에 5천만원이 들었는데 대전보훈청이 국고보조금에서 4천만원을 지원했고, 추모기념회가 후원금과 유족 회비로 나머지 1천만원을 충당했을 뿐이다. 추모식이 처음 열린 2004년부터 20년간 소방청의 예산 지원은 없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가 5일 국회에서 던진 "죽어서 영웅이 무슨 소용이냐"는 물음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승진은 직위와 급여의 변동일 뿐. 아들을 잃은 부모, 웃으며 퇴근 후 회식을 기약했을 동료에게 1계급 특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 주길 바랐을 텐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업무 중 산화한 소방관이 432명이다. 그때마다 정부는 "희생과 헌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사고 소식에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기억하겠다는 말보다 희생이 남긴 교훈을 되새기길 바라 본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의 안전도 확보하고 처우를 개선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해 줘야 433번째 눈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