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차붐의 동병상련

입력 2024-02-05 18:52:36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 축구 팬들이 열광하는 것만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언더도그의 반란이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눈길을 잡아챘다.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의 4강행이 진기해 보이듯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카보베르데, 적도기니 등이 선전했던 것이다.

특히 대서양의 군도를 영토로 삼는 '카보베르데'(Cape Verde)는 남아공에 승부차기로 석패해 4강 문턱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포털사이트와 지도에서 검색하니 60만 명 남짓의 인구에, 우리나라 시 단위에 그치는 면적이다. 스포츠 경기의 호성적이 국위 선양이라는 주장이 유효한 듯하다.

유럽에 대한민국을 널리 알린 이는 단연 '갈색 폭격기' 차범근 씨다. 대한민국을 알린 공신록에 올린다면 일등 공훈에 해당할 만큼 특출한 활약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1970년대 후반 혜성같이 등장해 1980년대 후반까지 맹활약한 그가 있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다크호스로 분류되기도 했다. 축구 변방인 동아시아에서 그의 존재감 덕분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그가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가족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은 바 있어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동병상련의 감정적 연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대 5로 대패한 뒤 감독직에서 쫓겨나고 온 가족이 비난의 올가미에 얽혔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과 알고 지낸 사이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그걸 '인간적 의리'라 부른다. 이것마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주저해야 한다면 삭막한 사회적 분위기를 탓해야 한다. 정치색의 잣대로 재단하려 드는, 고약한 마음 씀씀이에서 터져 나오는 비난의 아우성을 견뎌 낼 재간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럼에도 그의 선한 의지를 희석시킨 사진 한 장은 못내 아쉽다. 방송인 김어준, 주진우 씨 등과 집에서 고기 파티를 하고 찍은 사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표지를 장식했던 미국 타임지가 있었다. 조 전 장관과 지인 관계는 아니지만 '이념 동맹'으로 보이기 충분하다.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해명에서 서글픔이 밀려든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