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무차별 전략공천의 폐해

입력 2024-02-04 15:48:42 수정 2024-02-04 18:56:58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4·10 총선이 바짝 다가오면서 여야의 공천 방식도 윤곽을 잡아 가고 있다.

지역에서 주목받는 국민의힘 공천 방식이 정량보다 정성평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대구경북(TK)에서 낙하산 공천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역 의원과 당원협의회 위원장 평가에서 전체 배점 중 당 지도부가 평가하는 '당 기여도'가 15%나 되기 때문이다.

TK 총선에서 시도민들에게 가장 실망감을 안겨 주는 것은 유권자를 돌아보지 않는 여당의 묻지마식 낙하산 공천이다. 여기에는 인물 경쟁력을 따지지 않고 일방으로 기우는 묻지마식 투표 행태도 한몫하고 있다. 지역 유권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말이다.

낙후된 지역의 발전과 지역 정치력 확보를 위해 물갈이론을 앞세운 무차별적인 전략공천을 경계한다. 특히 지역민들은 검증되지 않은 용산(대통령실)발 내리꽂기 공천을 통해 지역 국회의원과 정치 지망생들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공천 학살에 대한 우려가 높다.

현역이나 지역에서 텃밭을 가꿔 온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바라는 게 아니다. 공천이 곧바로 당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 현실에서 인물 경쟁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공천을 요구하는 것이다.

시스템 공천에서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두 가지 요소는 일방적 공천 배제와 경선 여론조사 왜곡이다.

그동안 TK에서는 당 지도부나 청와대(현 대통령실)의 영향력을 통한 공천 배제와 전략공천이 횡행해 왔다. 이른바 '해당 행위자' '중진 물갈이' '진박 공천' 등의 명분(?)을 내세워 합리적 평가와는 무관한 특정 인물 배제나 특정 인물 발탁이 이뤄져 온 것이다.

왜곡된 여론조사도 불공정 경선의 한 요소다. 선거 때마다 특정 후보를 여론조사 경선에서 배제하거나 여론조사 항목 자체를 불공정하게 조작 또는 왜곡하는 행태가 빈번했다. 후보들의 경력을 임의로 선정하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응답자를 배제하거나 특정 연령대의 응답률을 과다 또는 과소 산정하는 등등의 방식이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은 이 같은 여론조사 조작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나 사법기관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2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통해 여론조사 조작을 비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무차별적인 전략공천의 폐해는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를 수밖에 없다. 결국 유권자들은 시스템 공천이나 막장 공천을 가리지 않고 특정 정당에만 표를 몰아 주면서 스스로 인물 선택권을 포기하는 셈이다. 당 지도부는 시스템 공천을 하지 않더라도 묻지마 지지를 해 주는 상당수 TK 유권자들을 믿고 이 지역에 대한 전략공천을 당연시해 온 게 사실이다.

전략공천으로 당선된 이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지역 현안에 몰입하기보다 다음 공천을 위해 중앙 정치판의 실세에 대한 눈도장 찍기에 더 열중인 경우가 허다했다. 공천권을 행사할 실세만 좇다 보면 지역 현안과 지역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처럼 막장 공천과 묻지마 지지가 되풀이되면서 지역의 정치적 위상은 추락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지역 정치인의 목소리는 무시당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당 지도부는 전략공천을 최소화한 시스템 공천에 집중하고, 유권자들은 내리꽂기 공천을 통한 '무늬만 TK'인 인사에 대해 두 눈 부릅뜨고 표로 심판해야 제 권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