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서울 여의도 하늘을 뒤덮더니 대한민국을 삼킬 태세다. 정치의 혐오와 증오 신드롬이다. 극단의 양극화 속에 진영 논리에 따라 반대편을 공격하는 비극적 행태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엘리트 집단과 미디어가 가세하면서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상대를 대화나 타협이 아닌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멸시·비하·모욕·위협·공격하는 메커니즘이 한국 정치판을 옥죄고 있다.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복기하면 정치가 외려 혐오와 증오의 바이러스를 확대재생산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청구를 추진하는 게 그중 하나다. 총선을 3개월 앞둔 가운데 국회 재의 절차 대신 해당 청구가 정략적이라는 건 삼척동자라도 안다. 3분의 2 이상 찬성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규정 절차를 미루고 '김건희 특검법' 이슈를 4월 총선까지 끌고 가려는 꼼수다. 제 편을 결집하면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데 혈안이니 정치 혐오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응급 헬기 특혜 이송도 그렇다. 이 대표는 피습 뒤 인근 부산대병원 대신 응급 헬기를 이용해 빅5로 불리는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를 통과시킨 거야(巨野) 대표의 이율배반적 태도다. 지역의료 무시 차원을 넘어 의료전달체계를 유린한 행위다. 민주당 어느 의원은 현지에서 수술받지 않은 건 다급한 응급환자들을 위한 배려라는 취지의 황당 주장을 폈다. 비판이 커지는데 이 대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이 대표가 8년간 시장을 지낸 성남시 의사들까지 규탄 행렬에 동참했겠나.
신당을 추진하면서 탈당을 거부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신의(信義) 논란에 휩싸였다. 류 의원은 정의당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면서도 정의당 비례대표 1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비례대표는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의원직을 잃는다. 친정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 눈을 질끈 감은 채 당과 당원이 달아준 금배지로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이합집산의 계절에 흔히 보아온 풍경이니 국민의힘 비례의원을 내놓고 신당 창당에 합류한 허은아 전 의원이 신선해 보일 정도다.
퍼스트 레이디를 지낸 김정숙 여사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패싱 해프닝은 웃프다. 김 여사는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한 위원장의 인사를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한 위원장은 "저를 모르셨을 수도 있다. 다음엔 제가 좀 더 잘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김 여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9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손을 잡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지나친 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악수를 나눠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한 적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업(業)의 법칙이 있다. 이른바 카르마다. 자업자득이나 인과응보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혐오 정치인의 속내에는 밑질 게 없다는 계산이 도사리고 있겠다. 혐오는 그러나 또 다른 혐오를 부르고 종국에는 증오로 이어져 정치 훌리건을 키운다. 이래서는 그 자리에 관용이나 포용·이해·신뢰 같은 공동체의 덕목이 들어서지 못한다.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극단적 정치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공격 형태가 더 확산된다. 상식·원칙·존중 같은 정치 문화를 보게 될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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