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탕! 은빛 칼날이 나가신다…꽁꽁 언 금호강은 '모두의 놀이터'
어린이부터 백발 노인까지 '쌩쌩'…매일신문 주최 신인 발굴 대회도
1970년 1월 20일 오전 10시 대구 동촌 금호강 특설 링크. 이른 아침부터 관중들이 몰려들더니 어느새 수천 명. 구름다리에서 케이블카(삭도)까지 강변을 까맣게 메웠습니다. 오늘은 제2회 경북신인빙상경기대회 날. 8세 꼬마부터 56세 흰머리 노장까지 초·중·고·일반부 남녀 선수 185명이 빙판 위에 섰습니다.(1970년 1월 21일자 매일신문)
"준비~ 탕!!" 화약 냄새가 무섭게 은빛 칼날이 간지나게 달립니다. 빵모자에 벙어리장갑이면 완전 무장. 무논에서, 냇가에서, 저수지에서 갈고 닦았는데 우둘투둘한 빙질에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탄성과 환호성으로 오랜만에 동촌에 큰 구경거리가 났습니다.
아침 기온은 영하 3℃. 해가 뜰 수록 얼음이 녹아 경기는 서둘러 12시쯤 끝이 났습니다. 썰매는 몰라도 고급진 스케이트는 아무나 탈 수 없는 것. 기록은 저조했지만 선수들은 의기양양했습니다.
신인 발굴을 위한 이 대회는 매일신문사, 경북빙상경기연맹 공동 주최로 열렸습니다. 제1회(1969년 1월 23일)때부터 이곳에서 치렀습니다. 적당한 강 수위에 넓디넓은 빙판은 고무 마커 깃발만 꽂으면 그대로 특설 링크가 됐습니다.
그러나 대회는 이상난동으로 빙질이 나쁜대다 전국대회 일정이 겹쳐 4년(1971년~74년)간 중단됐습니다. 이후 실내스포츠센터가 생기면서 동촌에서 열리는 경기는 1975년(제3회), 1976년 제4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대회는 중단됐지만 동촌은 갈수록 붐볐습니다. 1977년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소한(小寒)인 1월 5일 대구 최저 기온은 영하 10.3℃.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없이 한파가 11일 이나 몰아치자 빙판은 더 신이 났습니다. 오뎅(어묵) 파는 구멍가게, 스케이트 빌려주는 상인, 숫돌로 칼날 세우는 아저씨 모두 대목을 만났습니다.
"영하 7~8℃의 강추위에도 스케이터들의 심장은 화덕보다 뜨겁다. 코흘리개 어린이부터 흰머리 노년층까지 빽빽이 몰려, 빙판의 곡예는 서투른 멋으로 폭소를 자아내는가 하면 기막힌 묘기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1977년 1월 25일자 매일신문)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그랬습니다. 손등이 부르트고 발가락이 시리도록 빙판을 뒹굴었습니다. 추위는 무슨, 병원도 모르고 얼름판 위를 뛰어놀았습니다. 1970년대 겨울 동촌 금호강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케이트를 즐기던 모두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한겨울이 지나가는 지금, 금호강은 도무지 얼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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