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코돌이, 연판장 그리고 한동훈

입력 2023-12-26 17:30:00

김병훈 서울취재본부 기자
김병훈 서울취재본부 기자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 속에 임기 만료를 앞둔 21대 국회에서도 특히 여야 초선 의원들의 행태에 뒷말이 무성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강성 초선들로 구성된 처럼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2020년 사법개혁을 위한 연구모임으로 출발했으나 '친명 돌격대'로 변질되며 거야(巨野) 폭주를 주도했다. 민주당 내 각종 사건사고의 중심에는 처럼회 소속 초선들이 주로 자리했다.

최근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중단을 촉구하는 호소문은 심지어 비명 초선들이 총대를 메고 연명을 받았다.

하지만 연판장은 국민의힘 초선 그룹의 전매특허였다. 시작은 좋았다. 2020년 6월 15일 민주당의 단독 원구성에 반발해 박병석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하는 와중에 첫 집단 성명이 나왔다. 이들은 "21대 국회 과반인 여야 초선은 약육강식으로 압축되는 20대 국회와는 완전히 다른 신선함을 국민께 보여 드려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다짐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직후인 2021년 4월 8일엔 '깜짝' 공동성명이 나왔다. 초선들은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승자의 겸양을 보였다. 그러면서 "구시대의 유물이 된 계파 정치를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한 팀이 되겠다"고도 했다.

씩씩한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2년 7월 29일 친윤 초선들은 연판장을 돌려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연판장이 계파 정치에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다가 올 1월 17일 이른바 나경원 연판장 사태가 발생한다. 강성 친윤 초선들은 연판장을 돌려 전당대회에 출마하려던 나경원 전 의원을 반강제적으로 주저앉혔다. 최근엔 김기현 대표 거취가 논란이 되자 일부 초선들이 의원 단체 대화방에 "자살 특공대가 지도부를 흔든다"고 비판하는 등 집단행동을 벌였다.

대구경북(TK) 초선 그룹도 부화뇌동했다.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적극적 가담자로서 언제나 연판장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보수의 심장' TK 초선으로서 당 쇄신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줄서기'에 바쁘다는 비판이 나왔다. TK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론의 위협을 받는 탓에 소신 발언을 기대하기가 요원하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지역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초선은 늘 정풍운동의 중심이었는데 이 당은 일부 초선조차 완장 차고 날뛸 정도로 당이 망가졌다"고 쓴소리를 했다.

자연스레 주목받는 주장이 종적 교체론이다. 지금까지 TK 정치권의 인적 쇄신이 연령, 선수 등을 중심으로 한 횡적 교체가 주를 이뤘다면, 내년 4·10총선에선 초선이라도 엄격히 옥석을 가려내는 종적 교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실화될 경우 TK 초선 의원 누구도 재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벌써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 칼날을 초선 그룹부터 들이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동훈 비대위'를 지지한 초선들조차 물갈이 1순위가 될 것을 우려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후문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다. 반대로 개혁과 혁신에는 관심 없고 공천과 보신에 집중하는 초선은 재선이 된다 한들 더는 기대할 게 없다. 2020년 4월 15일 코로나 정국 당시 당선된 여야 '코돌이' 155명의 좌충우돌 의정활동 결말이 곧 공개된다. 이준석 전 대표의 표현을 빌려 무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