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1심 증인 또 신청하자 불호령
다양한 해법 제안 쏟아지고, 차츰 현실화되는 모습
법원장 후보추천제 폐지, 민사 항소이유서 제출의무화 법안 통과
향후 '사무분담 장기화'가 핵심, 법관 증원도 더 늦추기 어려워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지상과제 중 하나로 '재판지연 해소'가 꼽히는 가운데 법원에서도 확 바뀐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재판지연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도 다양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하나씩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재판지연 안 된다' 법정서 질책
"왜 절차를 지연시키세요?"
지난 18일 대구고법에서 있었던 박남서 영주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2심 첫 공판. 대구고법 형사1부 진성철 부장판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공판에서는 항소심 재판에 부를 증인채택을 놓고 재판부와 피고인 측의 공방이 오갔다. 피고인 측에서 증인 신청을 8명이나 했는데, 상당수가 1심에서 이미 신문했던 이들을 '쟁점이 달라졌다'며 다시 요청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증인에 대한 주 신문 시간을 4시간으로 잡아달라고 하거나, 일부 증인은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청한 것이 논란이 됐다.
진 부장판사는 "선거가 언제 끝났는데, 지금 소송 지연하는 것 처럼 보인다. 증인 중 경찰관은 사실조회를 하면 되는데 왜 항소심 시작 즉시 신청하지 않았냐"며 피고인 측을 질책했다. 신문시간이나 증인수를 대폭 줄이라는 요구를 피고인 측에서 선뜻 받아들이지 않자 '재판부가 일방적으로 10분씩 하라고 정할까요'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에서 증인 숫자는 그대로 두되 신문 시간을 10~30분으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2차 공판 시각도 통상 오후 1시 30분이나 2시에 시작하는 것과 달리 '점심도 간단히 먹으면 되지 않냐'며 오후 1시로 잡았다. 하루 만에 가능하면 결심까지 진행하겠다는 의지였다.
피고인 측의 무리한 증인 채택에 대해 재판부가 제동을 거는 것은 왕왕 있는 일이었지만, 이날 재판부가 보인 태도는 예전보다 훨씬 단호하고 강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 수뇌부에서부터 재판지연 문제를 해소하자는 주문이 누차 반복되면서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대구법원 관계자는 "법원 차원에서 구체적인 지침이나 시책을 확정한 바는 없지만 신속한 재판 이슈가 전국법원장 회의에서도 논의되면서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최우선 과제' 갖가지 대책 나와
'조희대 대법원' 출범 이후 재판지연 해소는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지난 15일 전국 법원장과 법원장급 인사 40명이 모인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관련 논의에 상당한 시간이 할애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거론된 내용은 사무분담(재판부 지정) 기간 장기화, 장기미제사건 심리에 법원장 투입,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 등으로 전해진다.
사무부담장기화는 현행 1~2년마다 바뀌는 재판부 인사를 2~3년으로 연장하는 형태다. 본인이 한참 들여다보던 사건을 재판부 변경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바뀐 재판부가 내용을 확인하느라 몇달 씩을 허비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일이 손에 익은 재판부가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해 개별 사건 선고 역시 더 빨라질 수 있기도 하다.
대법원은 내년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을 방침도 내놓은 상태다. 지난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지법 판사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로 법원장이 된 인사들이 후배 법관들에게 쓴소리를 하기 어려웠고, 여기에 법원 내 '워라밸 중시 분위기' 등이 겹치면서 재판지연 문제가 더 심해진 게 아니냐는 취지의 비판이 있었다.
민사소송 시 항소이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률안은 지난 20일 국회를 통과했다. 민사소송법은 형사소송법과 달리 항소이유서 제출의무나 기한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항소인이 1심 판결에 대해 실질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어도 변론기일 및 선고기일을 잡고 사건을 종결해야 해 사건 장기화의 원인으로 꼽혔다.
법관 증원 문제 역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2014년부터 묶인 법관 정원을 오는 2027년까지 370명 증원(3천214명→3천584명)하는 판사정원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후 관련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판사 증원에 대해서는 양당 간 이견이 없는 걸로 알려졌으나 검사 정원도 200여명(2천298명→2천512명) 늘리는 것에 대해 야당이 반대하는 모양새라 타협이 필요한 실정이다.
◆'사무분담'문제 공감대 뚜렷
법조계에서는 사무분담기간 장기화가 현실적 해법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강하다. 사건 숫자는 최근 외려 줄어드는 경향을 보임에도 재판이 지연되는 건 사건이 복잡화하는 경향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복수의 법관이 투입되는 합의부를 줄이고 단독재판부를 확대하는 방안, 전문법관 제도 확대 및 전문법원 신설, 변론 전 증거수집제도 도입 등도 해법으로 거론됐다.
20년차 현직 부장판사 A씨는 "재판부가 변경되면 앞선 재판부에서 결론짓지 못한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데만 몇달 씩 앉아서 야근을 하기도 한다"며 "이렇게 낭비되는 에너지만 줄여도 재판지연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법원장급 법관 B씨 역시 사무분담기간 장기화나 법관 증원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법원의 그 동안 업무방식은 전근대적으로 설계돼 한치의 빈틈없이 돌아가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판중심주의 등 제도적 개선이나 선진화가 이뤄졌으나 판사 수, 재판시스템은 과거에 머물러 한계를 노출했기에 이제는 체계를 큰틀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어 "1심을 현행보다 충실히 하도록 하고, 2심 이후는 절차 상 문제나 적법한 항소사유가 없는 경우 즉시 기각하는 등 간소화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항소심 속도를 획기적으로 올리고 상고심도 줄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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