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매년 비슷한 '상저하고'(상반기 저조, 하반기 상승) 패턴을 보여왔다. 올해도 코로나 팬데믹 종식과 기저효과에 힘입어 경제 실적들이 하반기에 극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공급망 위기 속에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졌고,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3분기에 반도체 업황 개선 등 제조업이 힘을 얻으면서 간신히 '상저하고'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특히 고물가는 골칫거리다.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둔화세를 보이다가 8월부터 3개월 연속 상승으로 바뀌었다. 특히 먹거리 물가는 기록적 상승세였다. 11월 우윳값 상승률은 15.9%로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인 2009년 8월(20.8%)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른 농산물 가격도 20~50%대 상승률을 보였다. 한국은행은 2024년 말이나 2025년 초가 돼야 물가상승률 목표 수준(2%)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쉽잖다. 한은은 올해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사상 처음 6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으나 올해는 7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묶었다. 인상도 인하도 못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와중에 올해 가계대출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나 1천900조원에 육박했다. 고금리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이 꺾이지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적어도 내년 상반기 중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집권 2년 차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무게 추를 '자유민주주의 가치'에서 '민생'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권 카르텔' 혁파, 한·일 관계 복원, 한·미·일 공조 강화는 호평을 받을 수 있지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와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부담 속에 민생 경제마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면 총선 필패는 물론 정권의 안정도 담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지난 19일 대통령 메시지는 '민생'에 집중됐다. 온라인 플랫폼 분야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기득권이나 독점력 남용에 대해 강력한 법 집행을 천명했다.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과 만나 "과도한 정치와 이념이 경제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막겠다"고 밝혔다. 돈 푸는 선심성 정치를 거부하고, 철저한 물가 관리로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강한 의지다.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갈 길은 멀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대외 불확실성은 시계(視界) 제로 상황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년 유예, 법정이자율 초과 시 계약을 무효로 하는 이자 제한 등 민생 법안은 국회에만 머물고 있다. 민생을 다독이지 못한 정권은 필패다. 혹독한 경제 겨울을 겪은 국민들은 미련 없이 정권을 갈아치웠다. 유권자의 40%에 이르는 중도층을 끌어올 키워드는 단연 경제다.
총선 정국을 맞아 새해에는 설득력 있고 실현 가능성이 담보된 경제 정책을 내놔야 한다. '메시지'가 아닌 '실천'이 국민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전 정권 핑계는 식상하고, 야당 비난은 공허하다. 연금·노동·교육 개혁에 실패하면 정권 안정은커녕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기득권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비로소 길이 보일 것이다. 여의도 기득권뿐 아니라 보수 지지층 기득권도 포함이다. 정치적 역량은 이럴 때에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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