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박근혜를 위한 기도

입력 2023-12-19 13:31:12 수정 2023-12-19 18:47:07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나는 '박근혜 후보'에게 미얀마의 걸출한 여성 지도자 '아웅산 수치'와 같은 정치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1998년, 그가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얘기다. TV 토론에서 그는 후보로, 나는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는 패널이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 아웅산도,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도 발자취가 뚜렷한 정치지도자였기에 얼핏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웅산 수치는 큰 정치인의 딸이지만 자신의 실천으로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로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그 점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늠름하였다. 그의 경력에서 실패라고는 1988년에 영남대학교 경영 비리의 책임을 지고 이사장에서 물러난 것이 전부였다.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밝혀진 경영 비리는 가볍지 않은 것이었고 그것 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이사장 자리를 떠났던 걸 말한다.

그는 오랜 칩거 끝에 대중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시민들은 공인으로서 그의 능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민들은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을 연민하여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는 결국 승리했다. 은둔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국회의원을 거듭했으며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담대했다. 특히 선거에서는 놀라운 통찰을 보였다. 간결한 말로 의표를 찌르는 정치적 수사도 발군이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대통령 노릇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우여곡절을 겪더니 결국 형사 법정에 섰다. 최종적으로 그가 선 곳은 역사의 법정이었다. 그의 책임은 자기 개인에 그치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쌓아 놓았던 보수의 역사적 신뢰 자본까지 모두 탕진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그것으로 그는 지금 더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는 상황, 모든 걸 내려놓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그를 지켜본 정치학자로서 나는 궁금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신전(神殿)에서 사뿐 걸어 나와, 아버지의 신탁(神託)으로 지도자가 된 신의 공주일 뿐인가? 아니면 천둥 벼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심장으로 보수의 대오를 굳게 다진 뛰어난 여성 지도자인가? 그런데 지금 그에게는 이런 질문조차 부질없어져 버렸다. 그는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지경에 있다.

그는 고단한 삶의 여정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그를 지켜본다. 그리고 고향의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나는 그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운기조식하기를 바란다. 기운을 차린 어느 날, 볕 잘 드는 달성군 한 카페에서 조용히, 그리고 진솔하게 자기 삶을 회고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오일장이 서는 날 과일 가게 앞에서 그를 만나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괜찮다. 대구·경북 지역사회는 그의 귀향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역사의 법정이 평결을 끝낸 그에 대한 심판은 더 논란할 필요가 없다. 지역사회가 마음을 쓰자는 말은 그를 지금처럼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사려 없이 측근 출마 추천서나 써 주면서 조롱받는 모습도 보기에 마뜩잖다. 강경 극우 유튜버가 그의 가까이 서 있는 품격 없는 모습도 언짢다. 손을 털고 떠난 학교에서 지난 인연을 자꾸 되살려 그가 괜한 핀잔을 듣는 모습도 민망하다.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성공하기를 바랐던 사람으로서 그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자신을 감옥에 보냈던 무리가 정치적 도움을 받으러 찾아와 손을 내민다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고향 마을에서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면 좋겠다. 그렇게 하도록 고향의 이웃들이 따뜻하게 그를 보살피면 좋겠다. 고향이란, 이편저편 떠나 대처에서 돌아온 상처 난 삶을 보듬고 어루만지는 곳이 아니던가?

행여 그가 어쭙잖게 정치에 연루되어 노년이 초라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솔직하게 톺으면서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주는 노마지지(老馬之智)로 조용히 고향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니 그를 다시 정치로 불러내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