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호리병과 파초선을 든 파도 위의 신선이다. 짙은 눈썹에 눈 모양이 특이하다. 머리칼은 양 갈래로 묶어 넓은 이마 위로 쌍상투를 틀었고 풍성한 수염이 나부낀다. 등 뒤로는 쌍검을 메었고 어깨와 허리엔 나뭇잎을 엮어 걸쳤다.
중국 도교의 팔선(八仙) 중 우두머리인 종리권이다. 한나라 때 무장이었다고 해서 한종리라고도 한다. 여동빈을 단련시켜 검선(劍仙)으로 길러낸 스승으로 알려진다.
호리병에서 올라와 퍼지는 연기 속에 호리병을 든 또 다른 종리선인을 그려 넣은 귀신같은 솜씨다. 이런 실력의 주인공인 김득신은 정조가 아낀 화원화가였다. 안목이 다락같이 높았던 김정희가 호리병의 연기를 보라며 제화를 썼다.
벽동파복(碧瞳皤腹) 시기아진(是豈我眞) 인약멱아(人若覓我) 시차호중지연(視此壺中之烟)/ 푸른 눈 불룩한 배, 이 어찌 나의 참모습이랴! 나를 찾으려면 이 호리병의 연기를 보아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제(題) 긍재(兢齋) 종리선인도(鍾離仙人圖)/ 추사 김정희가 제하다. 긍재(김득신) 종리선인도
이름 위에 '김정희인' 한 방을 찍은 낙관도 이 작품에 딱 어울려 김정희답다. 종리권을 빈틈없이 재현한 '종리선인도'는 혹 김정희의 주문이 아니었을까? 김득신이 작고한 해에 김정희는 37세였다.
김정희는 '벽동'으로 제화를 시작한다. 신선의 용모인 '푸른 눈동자'는 뜻이 여러 가지다. 말 그대로 벽안의 비 아시아계를 뜻하기도 하고, 세속을 벗어난 시원한 눈빛으로 비유하기도 하며,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을 말하기도 한다. 나이 들어도 늙지 않은 모습을 동안벽동(童顔碧瞳)이라고 했다.
벽동은 독립운동가이자 미술가인 이상정(1897-1947) 장군이 대구에서 서양화가로 활동할 때 만든 대구 최초의 서양미술 연구단체 이름이다. 이상정은 1923년 12월 14일 벽동사(碧瞳社)를 창립했다. 일본에 유학하며 유화, 수채화를 배운 이상정은 대구의 첫 한국인 미술교사였고 대구에서 서양화 개인전을 처음으로 열었다.
이상정은 아우인 시인 이상화와 함께 대구 3·1운동을 이끌었고 지역사회의 문화운동, 민족운동을 선도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에 만족하지 못한 이상정은 1925년 하얼빈으로 망명해 중국군에 들어가 참모직으로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항일전선에 참여한다. 중국에서는 틈틈이 전각에 몰두해 3권의 인보(印譜)를 남겼다.
올해는 벽동사 100주년이다. 예술가의 길을 가려했던 젊은 이상정은 아름다움을 보는 순수함에 대한 의지를 신선의 푸른 눈 '벽동'에 담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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