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플레이로 사랑받았던 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 공격수 데니스 베르캄프는 지도자들의 덕목으로 '자율성 존중'을 으뜸으로 쳤다. 그는 자서전에서 최고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자유를 줬다고 술회했다. 그런 그가 자율적으로 했던 훈련 중 공들인 것에는 '패스'가 있다. 단순 패스만 1시간 넘게 하는 것이었는데 같은 대표팀 공격수 반 페르시가 그걸 보고는 의아하게 여기다 이내 깨달았다고 한다. 기본을 반복하는 게 최고의 기술 연마라는 걸.
무협의 세계에서 정파와 사파로 갈리는 건 수련 초기 스승으로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운기조식'(運氣調息)하며 기본을 수련하는 데 힘쓴 이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고수들의 품격이다. 반대로 기본을 익히지 못하고 서둘러 기술부터 쓰려 들면 곧장 위험에 빠진다. 재능이 있는 이도 '주화입마'(走火入魔)로 앞길을 망친다.
시간 대비 성능 강한 비기에 맛 들이면 판단력을 잃는다. 기력을 잃어 비참한 말로로 향한다는 걸 알고도 마력에 매혹돼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 하루살이 불나방처럼 산화하더라도 주목받고 싶고, 최상위에 앉아 보겠다는 파멸의 욕망이다.
'벚꽃'을 뜻하는 일본어 '사쿠라'(桜)가 우리 정치권에서 제철이다. '변절자'라 풀이하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근본이 없다는 '야매'(뒷거래나 음지를 뜻하는 '야미'〈闇〉에서 왔지만 그렇게 읽으면 기본을 갖춘 듯해 말맛이 살지 않는다)가 더 어울려 보인다. 정치를 야매로 배웠든, 외래어를 야매로 배웠든 말을 제멋대로 왜곡해 쓰는 건 매한가지다. 정통 정치의 외길을 걸어온 것도 아닌 이들이 사쿠라 운운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하긴 사이비 종교도 정통성을 강조하는 마당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정통성이 부족하니 버금가는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를 강조한다. 치유의 은사를 조작하는 데 집중하고, 때론 공중부양 같은 기예적 묘기에 천착하기도 한다.
삼류들이 판칠수록 기본을 갖춘 이들이 떠난다. 손보미 작가는 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서 '너무 뛰어난 재능은 환멸을 부르는 법'이라고 썼다. 1등을 이기려 부단히 노력하는 2등이 말한다. 1등은 진작 나가고 없다고. 나야 1등을 이기려고 계속 노력해서 이 자리에 오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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