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이러면 완전히 나가리인데…."
2012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에서 극중 인물 강형철(최민식 분)이 폐쇄된 실내 낚시터에서 살인 청부업자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경찰청 수사기획과장인 그는 먼 과거에 초임 경찰 이자성(이정재 분)을 폭력 집단에 잠입시켰고, 그가 죽음을 맞은 장소는 이자성과 비밀리에 접선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 킬러가 찾아왔다는 건 경찰이 한국 최대의 조직폭력 집단 골드문을 장악하고자 실행한 작전 '신세계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뜻.
영화는 숱한 명대사와 명장면을 쏟아냈지만 내게는 이 장면이 꽤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미장센 때문이었다. 영화를 관통하는 내러티브가 메타포로 공간에 담겼다. 실내 낚시터의 물을 보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똥물'이다. 흙탕물에 사는 붕어조차 "이런 데서는 못 산다"며 '지느러미사래' 칠 것 같은 곳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형철의 행동은 '더러운 물에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의미와 함께 작전이 실패하리라 암시한 것.
독수독과(毒樹毒果)다. '독이 든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말이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의해 발견된 2차 증거의 증거 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위법한 증거 수집을 금하는 형사사법의 원칙이다.
법학 이론을 떠나 독수독과라는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세상만사 이만한 진리도 없다.
과거 '수의불이심'(守義不移心·의리를 지키고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이란 글귀와 함께 '지역과 나라를 위해 일할 참일꾼'을 자처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 지역 주민으로부터 지역 발전을 위한 건의를 듣는 창구를 마련하고, 약속을 지키겠노라 다짐했다. 그가 당선된 지 3년 됐을 무렵, 그의 주변에서는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말마다 지역구 전통시장이며 행사장에 데려가도 도통 고개를 숙일 줄도 모르고, 주민을 만나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측근은 그의 행동이 마뜩잖아도 이해는 했다. 의원이 공천받길 원한 지역구는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 했다. 그런 의원의 마음을 알기에 공천 언질을 받았을 때 이게 맞느냐며 몇 번을 되물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역시 독수독과다. 그 지역의 선량(選良)이 되고자 했던 처음의 마음이 순전하지 않았으니 지역구 주민에게 정이 갔을까. 선거 때 이 지역을 "한국 경제의 중심지로 도약시키고, 구겨진 지역 정치의 자존심도 되찾겠다"던 약속이 기억났을까. 그는 임기 4년 내내 '존재감이 없다'는 평만 듣다가 끝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행은 주민의 몫이다.
제22대 총선을 향한 레이스가 12일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막을 열었다. 예비후보자 등록을 전후로 대구경북에서 출마 선언 소식이 쏟아진다. 대구경북 어딘가는 '총선 맛집'으로 불릴 정도로 출마 예정자가 줄을 섰다. 이들 모두 "지역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출마한다"는 말이 진심이면 좋으련만, 선거 때마다 그랬듯 개중에는 국민보다는 '남이 모는 차를 4년간 타고 싶은 마음'에 고향으로 온 이도 있지 않을까.
시작부터 기우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만큼은 지역민이 '독이 든 나무'를 잘 가려내 '독이 든 열매'를 취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하아… 그렇지 않으면 4년간 완전히 '나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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