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기 사회부 기자
아파트 신축 현장마다 지연, 날림공사, 하자로 인한 다툼이 일상이 되고 있다. 신축 현장이 많은 대구권에서 이런 사례가 두드러진다.
이달 중순 대구 수성구 파동 수성해모로하이엔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온갖 자재가 널브러져 있는 '공사판'에서 사전점검 행사를 강행했다. 도배는커녕 문고리조차 달리지 않은 집에서 사전점검은 언어도단이었다.
공사가 완료된 부분도 심각한 하자가 속출했다. 시공된 타일이 견본주택과 다르거나 화장실은 바닥 경사가 잘못 잡혀 배수가 잘 되지 않았다. 화재대피공간 미닫이문, 피난 사다리 덮개가 충분히 열리지 않거나 스프링클러 위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등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도 노출됐다.
이보다 보름 앞서 1㎞ 남짓 떨어진 수성더팰리스푸르지오더샵 신축 단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곳 역시 사전점검 당시 붙박이장이나 조명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았고, 인부들이 남긴 걸로 추정되는 술병, 담배꽁초, 오물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난달 경북 경산 중산자이 역시 부실 사전점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모두 시공사가 입주 지연 배상금을 물지 않으려고 입주예정일 45일 전에 사전점검을 강행하다가 발생한 촌극이었다.
입주 예정자들은 재산 가치 하락이나 구설에 오르는 피로를 감수하고 문제를 공론화하길 선택했다. 이들은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서 집회를 열었고, 사전점검 재시행 등을 요구하며 지자체가 준공 승인을 내주지 말 것을 촉구했다.
시공사들은 입주에 지장이 없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설령 그 약속이 지켜지더라도 입주 예정자의 마음이 놓일 리가 없다. 지난해 광주에서 벌어진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올해 인천 검단신도시 '순살자이' 사태를 지켜본 사람들이 '빠르고 꼼꼼한 시공'을 믿을 수 있을까.
속도전 끝에 시공사가 준공 승인을 받고 나면 입주 예정자들은 하자보수를 읍소해야 하는 처지로 뒤바뀐다. 최근 대구 서구의 4개 아파트 단지에서 하자보수 관련 분쟁과 집단 민원이 발생한 게 대표적이다.
시공사들도 할 말은 있다. 올해 유난히 잦았던 비, 인플레이션과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여의치 않았던 자재 수급 등이 모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심각한 국내 건설 노동자 사이에 숙련도가 낮은 저연차 근로자,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가 늘면서 생기는 문제도 토로했다. 일리는 있지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사전점검 전 세대 내부 공사를 완료해야 한다'는 식의 요건조차 없는 제도적 맹점도 갈등을 키운다. 사전점검 재시행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아니어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준공 승인 권한을 바탕으로 지자체가 건설사와 협의에 나서야 간신히 성사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허술한 규정 탓에 사전점검 민원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올해 초 아파트 내부 공사를 끝낸 뒤 사전점검을 하도록 주택법 시행령을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8개월째 입법예고조차 못 했다. 조만간 입법예고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내년 하반기에야 시행이 가능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주 작은 물건 하나를 사도 소비자의 권리를 얘기할 수 있는 시대다. 평생을 모아도 마련하기 어려운 거금으로 산 아파트가 불량품일 때 소비자는 왜 무력한 걸까. 입주 예정자들은 지금도 정부와 지자체에 대책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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