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모호하게 사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민주주의이다. democracy는 그리스어로 민중, 즉 국민이라는 뜻의 demos와 지배 혹은 통치라는 뜻의 cratos라는 단어의 합성어 democratia에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democracy의 본뜻은 '국민이 (스스로) 통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통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특정한 개인이나 당파, 집단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독재의 반대 개념이다. 따라서 하나의 절차 혹은 방법론으로서 '민주제'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가 동등하게 하나의 투표권을 갖는 '1인 1표'와, 최종적으로 가장 많이 득표한 안건이 확정되는 '다수결 원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대해 다수의 지지를 얻고자 경쟁을 거쳐 집단적 의사결정이 이뤄진다고 간주했다. 한마디로 정치적 의사결정은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이뤄지며, 헌법에 보장된 경우를 제외하면 다수가 소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fact)은 이 같은 생각과 차이가 난다.
첫째, 사람들은 오직 선거 때만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평상시에도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속적으로 행동한다. 지역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은 지역사회와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각종 시민 사회 활동을 하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꾸준히 참석한다. 사실상 '투표 거래'를 위한 운동을 하는 셈이다. 한편, 유권자들도 선거 때만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치적 성격의 모임 참여에 적극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물론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각자의 이해관계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선거의 판도를 좌우해 온 지역주의 역시 유권자의 이해관계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둘째,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가 일방적으로 소수를 지배한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시장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히려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기도 한다. 원래 집단이 커질수록 합의하기 어렵고 집단행동이 어려운 법이다. 왜냐하면 설령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 수가 많으면 조직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반면, 소규모 집단일수록, 구성원들의 공통 이해관계가 분명할수록 집단행동도 쉽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잘 조직화한 소수집단은 오히려 정치시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고 표를 거래함으로써 합리적인 보상을 받아낼 수 있다. 결국, 현실 정치에서는 잘 조직된 소수집단이 다수의 희생을 통해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현상이 더욱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부실기업은 퇴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부실기업이 퇴출되고 돌아가던 공장이 폐쇄되면 종사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치명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표를 통해 국가가 개입해서 부실기업 퇴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정치권에 부실기업의 퇴출 건을 해결해 주면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지지할 것을 약속한다. 결국 이처럼 표의 거래를 통해 정치권의 압력으로 부실기업을 정부가 떠안게 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납세자의 몫이 되고 만다. 납세자들은 너무 많고 흩어져 있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서로 연합전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특정 이슈와 관련된 소수의 여러 단체가 힘을 모아 더욱 크고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정치적 거래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적 거래가 국가 전체에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은 명백하다. 만약 여러 소수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표의) 거래가 만연해지면 우리가 공익이라고 부르는 다수의 이익은 쉽게 희생되고 만다.
민주주의 국가는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지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 내년 총선을 향한 기지개를 켜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켜주기 위한 훌륭한 정치 수단이다.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의 권리가 쉽게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횡포로 다수가 희생되지 않도록 국민이 의식을 갖고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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