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성추행·폭행·폭언…상처뿐인 인생, 재활 치료도 이혼 소송도 '막막'

입력 2023-11-21 06:30:00

입양가정서 여덟살때부터 의붓오빠 성추행 시달려…5학년때 집 나와 방황
중학교 포기하고 섬유공장으로…이후 가정 꾸렸지만 8년만에 마침표
고달픈 생활 속 재혼도 실패…사고로 왼쪽 다리 마비, 남편은 "나가 죽어라"

지난 17일 이건하(가명·48)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힘겹게 전동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7일 이건하(가명·48)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힘겹게 전동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윤정훈 기자

"꼬마야, 왜 울고 있니?"

모두가 발걸음을 서두르는 오전 시간, 한 20대 여성이 걸음을 멈추고 어린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기껏해야 아홉살쯤 돼 보이는 아이는 벽에 기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준비물이, 있는데, 돈을, 안 줘서, 이대로, 가면, 선생님한테"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고 있구나.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성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아이를 이끌고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이내 아이의 손엔 스케치북 2권과 12색 크레파스가 들렸다.

40년 전, 모르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 그 여성은 지금까지 이건하(가명·48) 씨의 기억 속에 선명히 살아있다. 그는 건하 씨가 삶에서 드물게 마주했던 '선의'였다.

◆의붓오빠의 검은 손길…의지했던 남편은 '게임중독'

건하 씨는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넷째는 기필코 아들을 낳으리라.' 어머니는 의사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출산을 강행했다.

결국 어머니는 딸인지, 아들인지 모를 동생과 함께 분만 도중 세상을 떠났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어린 세 딸을 두고 집을 떠났다. 건하 씨가 겨우 세 살 때였다.

한 살 터울인 언니와 동생은 큰아버지 집으로, 건하 씨는 둘째 고모 집으로 보내졌다. 고모와 생활도 오래가진 못했다. 건하 씨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즈음 고모부가 병환으로 눈을 감았다. 이후 형편이 어려워진 고모는 수소문끝에 건하 씨를 다른 가정에 입양시켰다.

그 후로 비참한 삶이 시작됐다. 4형제가 살던 입양 가정에서 세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녀 함께 살지 않았고, 중학생인 막내 아들만 함께 지냈다.

막내 오빠는 건하 씨에게 끔찍한 존재였다. 그는 집에 단 둘이 있을 때면 건하 씨의 옷을 벗기고 신체 곳곳을 더듬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친구들까지 데려와 건하 씨에게 몹쓸 짓을 했다.

건하 씨가 고작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끔찍한 현실,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무심한 계부, 인색한 계모에게 알려봤자 바뀌는 건 없으리란 걸, 어리지만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때 집을 나와 방황했다. 그 일로 파양 당한 뒤 아버지와 재회했다. 아버지는 무책임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뿔뿔이 흩어졌던 자매들을 데려왔다.

기적 같은 상봉의 감동은 극심한 가난이라는 현실에 금새 지워졌다. 네 식구는 월세 5만원, 낡은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월세마저 없어 고모한테 손을 벌릴 만큼 형편은 쪼들렸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건하 씨도 국민학교만 졸업한 뒤 언니를 따라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2교대로 돌아가는 살인적인 근무 시간, 상사였던 사촌오빠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며 스무 살을 맞았다.

공장은 관뒀지만 거기서 일하던 네 살 많은 남자와 인연이 돼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낚시와 온라인 게임에 미쳐 늘 가정에 소홀했다. 건하 씨는 8년만에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폭력에 멍든 재혼 생활…사고 후유증까지 겹쳐

지긋지긋했던 첫 결혼은 끝났지만 건하 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식당 서빙, 모텔 청소, 부업 등을 전전하는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다. 어느새 30대 후반이 된 건하 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택시 요금이 4천800원이 모자랐다.

기초생활수급비가 입금되면 보내주겠다고 택시기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기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후 택시기사에게서 근처에 왔으니 차나 한 잔하자고 종종 연락이 왔다. 남편 김준석(가명·61) 씨와는 그렇게 연을 맺었다.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4천800원으로 시작된 재혼은 폭력으로 얼룩졌다. 혼인신고 과정에서 남편에게 이혼 전력과 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건하 씨 본인도 이혼 경험이 있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남편은 매달 생활비로 60만원만 건넸고, 식비와 생필품 등 모든 걸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최근엔 속옷이 너무 낡고 해져 5만원만 더 달라고 했다가 심한 욕설과 함께 뺨을 7대나 맞았다. 무자비한 손찌검이 지나간 얼굴에는 시커먼 멍이 들었다.

물리적인 폭력도 문제지만 남편의 끊임없는 폭언도 괴롭다. 건하 씨는 재혼 후 1년 6개월 정도 지나 길을 걷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경계석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은 마쳤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마비돼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몸이 됐다. 여기에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겹치면서 장기간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족의 간호가 절실한 그에겐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나가 죽어라", "니가 정신병자라 그렇다"는 등 남편의 폭언만 돌아오기 일쑤다.

건하 씨의 이혼 요구에도 남편은 알아서 하라며 외면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협의 이혼이 어려우니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싶지만, 재활 치료도 받지 못하는 형편에 소송 비용을 어찌 감당할까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외출한 건하 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악의에 찬 말들과 손찌검을 견뎌야 할까. 건하 씨는 내키지 않는 몸을 느릿느릿 휠체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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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가난으로 꿈을 접고 동거했던 남성의 폭력으로 얼굴 함몰 피해 입은 이민정 씨에게 2,520만원 전달

가난한 형편에 꿈을 포기하고 동거했던 남성에게 폭력을 당하며 얼굴이 함몰되는 피해를 입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이민정(매일신문 11월 7일 10면)에게 2천520만8천631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주)삼이시스템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이동욱 5만원 ▷나선희 3만3천원 ▷이병규 2만5천원 ▷서숙영 2만원 ▷신종욱 2만원 ▷강지원 1만원 ▷김성옥 1만원 ▷가지영 5천원 ▷이진기 5천원 ▷이장윤 2천원 ▷'조금이라도돕기' 100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낡은 주택에서 93세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윤선웅 씨에게 2,239만원 성금

화장실이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90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지적장애인 윤선웅(매일신문 11월 14일 10면)에게 40개 단체, 143명의 독자가 2천239만1천833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매일서예문인화대전초대작가회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기태)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무한기술(윤종천)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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