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한국적인 놀이 정신으로 무대를 달리는 연극이 있다. <조치원 해문이>,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 < 닭쿠우스>,<불가불가>등 한국연극 토양에서 충청도식 패러디 연극을 개척한 이철희 연극 <맹>(10,25~11,12, 예술공간 혜화, 극단 코너스톤)이다. 이번 재공연은 초연보다도 놀이 정신의 디테일을 살린다. 웃다, 울다 관객을 흔들어 놓는 충청도식 이철희 연극에서 배우들은 놀이로 무장한다. 극장이고 연극임을 환기하는 장면부터 깔깔대며 웃음이 터진다. 촌철살인의 언어들은 배우들의 충적도식 억양으로 발열되고 느릿느릿하면서도 날카로운 현대식 풍자언어로 된다. 사회현상을 베어내는 칼날은 이 작품에서는 웃음이 무기다. 한국 사회 현실을 풍자로 돌려치는 배우들의 대사로 95분 동안 관객들이 몸을 뒤틀거나 딴짓하는 시선 한번 돌릴 수 없도록 몰입을 시키고 있다. 장면전환도 '똑똑' 거리면 방이 되고 두 손을 들고 달리며 속도감을 주면 말에 올라탄 장면이 된다. 놀이성은 다양한 연극들에서 활용되지만, 이철희의 <맹>에서 만큼은 배우들의 놀이성이 캐릭터로, 극적인 장면으로 다변화된다. 놀이는 규칙이 깨지면 공연이 흔들리는데, 이철희는 철저히 놀면서도 장면을 계산적으로 구조화하고 배우들은 극을 세워가며 긴장감을 주고 웃음으로 이완시켜 낸다. 정과 동의 경계를 왕복하고 웃음과 비극성을 섞으며 달리는 무대는 생동하는 마당의 공간이 된다. 이 작품은 1940년대 초반 발표한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를 이철희 특유의 코드로 각색한 것이다.
◆ 맹진사의 삶은 짠하고, 배우들의 놀이성과 호흡은 틈새없는 웃음으로 달리는 <맹>
무대는 비어있다. 변변한 연극적인 장치도 없다. 서양 카펫으로 공간을 구조화하고 의자, 방석 정도 소품 몇 가지가 전부다. 프롤로그부터 길놀이를 하며 우리 마당 정신으로 박자와 리듬을 만들고, 놀이와 현대판 풍자로 무대를 종횡하며 이철희 특유의 패러디와 놀이로 매서운 돌려차기를 한다. 무대로 전진하며 쌓아 올려내는 장면은 우리 정서가 맞닿아 있고 웃음에는 비극성이 배어있다. 풍자에는 현시대의 부조리와 모순, 신분 위계와 계급을 망라한 인간들이 들어있다. 이번 재공연에도 이철희 특유의 패러디성과 재구성 감각으로 현대적인 <맹>으로 압축시켰고 소극장 무대는 이철희식 배우들의 놀이 정신 무장해 우리 전통의 마당으로 돌려놓았다. 작품 제목도 권력과 신분 상승의 욕망에 어두운 '맹'한 '맹' 진사를 겨냥하면서도 한 음절로 들리는 맹의 소리에는 우리 리듬감도 들어있다. 제목도 이철희 연극답게 재치가 넘치고 등장인물의 모순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의미도 크다. 여전히 반세기를 넘겨도 신분 상승을 위한 맹 진사의 욕망은 자기 딸도 권력의 주변으로 밀어 넣는 현대판 맹 진사를 뛰고 달리게 하며 이 시대 무대로 소환한다. 충청도 식으로 툭툭 치는 조롱과 비유는 요즘 정치 현상을 떠올리게 하고 2023 대한민국의 현실을 웃음으로 풍자한다. 지금까지 공연된 '맹진사댁의 경사'를 전복한 이철희 맹은 360도 다른 맛이고 다른 풍경이다. 무대 주변의 현대식 방석은 전통극의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이철희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놀이로 소극장은 질펀한 우리의 마당놀이 형식을 취하면서도 극으로 세련되게 돌려놓는다. 맹 진사의 조나단(말)은 신분 상승의 욕망이다. 요즘으로 치면 전청조 사태로 논란이 되는 '벤틀리' 정도 아닐까. 머리에 올린 하얀 인조 머리 가닥으로 백마를 타고 달리는 신분 상승의 욕망을 말로 둔갑시키고 관객들은 박수치고 웃고, 키득거린다. 무대에 깔린 카펫은 서양극을 조롱하고 우리의 거리 마당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장면과 정적 사이에 1초의 느슨한 전환도 템포가 처지면 이철희 놀이는 깨지는 것처럼 배우들은 1초의 경계사이를 형성하지 않으려는 속도감으로 무대를 달리며 놀이로 뛰고 달리며 받아내는 대사가 벅찰 텐데도 말(대사)로 패스하고 그 말을 잡아 속도감으로 장면으로 이어 붙이는 배우들의 연기로 이철희의 '맹'은 같은 재료로 맛을 낼 수 없는 이철희의 연극과 언어를 형성한다. 배우들의 연기로, 이철희의 감각과 놀이 정신으로 우리의 소리와 리듬을 만들고 템포감 있게 세워지는 장면전환과 구성으로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을 생산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짠 '하면서도 재밌다.
이철희는 이번 작품으로 투박하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우리의 한옥을 그만의 방식으로 유럽, 서구식 주택과 아파트가 아닌 살만한 우리의 집으로 개량시켜 놓았다. 연극 <맹> 이후부터 이철희 연극은 그의 언어가 된 것 같다. 특히 맹진사(김은석 분)가 갑분이(윤슬기 분)의 혼례로 신분 상승이 좌절된 장면을 내면을 5분 동안 정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는데 연출이 탁월하면서도 감각적인 명장면이다. 이 시대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낸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조나단을 타고 권력의 욕망으로 달려가는 맹 진사 장면은 시적이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관객과 평론가, 연극인들이 극장을 찾는 것은 이철희 연극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놀이 감각이 탁월하다. 성공의 5할은 이철희 한데 있고, 5할은 맹 진사 김은석, 부인한씨 곽성은, 맹 노인 고병택, 갑분이 윤슬기, 입분이 주은주, 참봉에 정홍구, 삼돌에 신금호가 무대에서 연출의 신호를 받으며 버티고 잘 놀아줘서 그렇다. 특히 김은석, 고병택은 훈련된 감각 있는 배우들이다. 이철희 연출은 배우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우리 재료를 들고 놀이성으로 달린다. 그러니 배우의 감각이 살아있을 수밖에. 이철희 특유의 페러디성과 재구성의 감각으로 현대적인 맹으로 압축한 공연은 두, 세 번 봐도 웃다 울 수 있는 연극이다. 이철희 연출은 올해 두 번의 상을 수상했다. <그, 윷놀이>로 서울문화재단의 제1회 '서울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지난달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80년대 이창훈이 출연한 <열쇠와 자물쇠> 이후 희비극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품은 <맹>이 유일한 듯하다. 관객을 흔들어 놓는 충청도식 이철희 연출의 <맹>,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짠'해도 되는겨?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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