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 한국이 헬조선?…알고보니!

입력 2023-11-17 06:42:00 수정 2023-11-17 13:21:28

◆국내에선 고유가·고금리·고물가 헬조선 아우성!… 유럽과 미국 비해 가계 재정 좋아?
◆중년 캥거루족 급증, 70대 부모 시름…결혼 늦고 안 하고 아이 안 낳고, 사라질 나라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2년 전에 비해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2년 전에 비해 '가계 경제가 더 낫다'는 통계가 나와 눈길을 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 행사인 '2023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이달 30일까지 총 20일간 진행된다. 연합뉴스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경영학 박사.사회복지사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경영학 박사.사회복지사

고금리·고물가·고유가 기조가 장기화 하면서 서민 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비속어가 그럴 듯하게 들릴 만하다. 다른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근거없는 부러움이 생기기도 한다. 내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일종의 심리적 환상이다.

실제로 그렇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2022년 사회적 위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오히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서민의 삶'이 한결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요 25개 국(2020년 조사 미참여 국가 제외) 국민 중에서 '가계의 경제적 상황이 1년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1.3%였다.

OECD의 사회적 위험 조사는 2년마다 시행되는 데, 2020년엔 32.1%로 9.2%포인트 낮았다. 선진국 국민들은 코로나19 초창기 때보다 엔데믹 이후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 28.4%→49.5%, 덴마크 17.3%→38%, 폴란드 42.7%→62.1%, 독일 26.8%→45.1% 등 유럽 선진국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 특히 컸다. 미국도 23.6%→31.1%로 '어렵다고 느끼는 국민'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에 한국은 2022년 기준 경제 상황이 악화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36.8%로 2년 전 43.1%보다 오히려 6.27% 포인트 하락했다.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기는 하지만 세계 주요국의 흐름과 완전히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경제적 여건이 좋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선 곤란하다. 주요 20개 국은 2020년 9월 기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지원(재정지출+세제 지원)을 국내총생산(GDP)의 6.6%나 쏟아 부었다. 미국은 11.8%, 일본은 11.3%를 지출했다. 한국은 3.5%에 불과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때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던 선진국 국민들이 엔데믹으로 긴축 재정에 들어가면서 큰 곤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의 제재에 화가 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 하면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산 비중이 40%를 넘는 유럽은 직격탄을 맞았고, 에너지와 식량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인플레이션은 가속도가 붙었다. 서민들의 삶은 그만큼 더 고통스러워졌다.

고유가로 인한 고통은 한국도 비슷하지만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 공공부문이 수십 조의 적자를 감내하고, 정부는 관련 세금을 인하하면서 일차적 충격을 흡수한 것이 차이점이다. 유럽 국민들보다 한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이 훨씬 낮다는 뜻이다. 물론 공공부문과 정부에 전가된 청구서는 언젠가 반드시 국민들이 갚아야 할 몫이다.

노인이 된 부모에게 얹혀 살고 있는
노인이 된 부모에게 얹혀 살고 있는 '중년 캥거루족'이 급증하고 있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한국인들의 삶이 행복하기보다 힘겨운 것은 경제적 요인 이외에 사회적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조사 분석 결과 '9월 기준 쉬었음' 상태에 있는 40대는 27만명으로, 5년 전인 2018년 같은 달 19만5000명보다 38.5%나 증가했다. '쉬었음'은 미취업 상태에서 별다른 이유없이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들은 대학 재학 중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공무원 시험 준비 등을 했으나 여러 번 떨어지면서 아르바아트를 병행하기도 했지만 40대를 넘어선 이후론 경제활동 자체를 모두 그만 둔 경우가 많다. 이들을 부양해야 할 부모는 이제 70대 노인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경우 2000년 초반 청년층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소개된 이후 20년이 지나면서 중년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로 자리잡았다. 한국 역시 이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가 부족해서 중년 캥거루족이 양산되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8월 기준 구인난으로 인해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생긴 빈 일자리는 22만1000개나 된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40대 캥그루족이 구직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건 '원하는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의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급여·근로조건의 차이가 확대되면서 구직자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한정되고, 거듭된 취업 실패 경험이 중년의 캥거루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 큰 문제는 30대와 50대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이다. 부모 집에서 사는 50대 미혼 쉬었음 인구는 5년 전 1만8000명에서 3만2000명으로 77.8% 늘었고, 30대는 9만7000명에서 14만6000명으로 50.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집에서 무작정 쉬고 있는 자식들이나 이들을 돌봐야 하는 노부모들이나 마음 편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감된다.

부부 합계출산율이 급감하고,
부부 합계출산율이 급감하고, '딩크족'(아이를 낳지 않는 직업 가진 부부)이 일반화하며, 늦게 결혼하는 경향이 퍼지면서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인터넷 캡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有)배우 출산율 변화' 논문에 따르면 2020년 부부의 합계출산율은 1.13명에 불과했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도 평균적으로 1명을 조금 더 낳는 수준에 그쳤다는 뜻이다. 부부 출산율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4~1.5명대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부부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1992~2021년 사이 신생아 수가 8만9377명이나 줄어들었다. 혼인율 하락이 출생아 수 감소에 미친 영향과 비숫한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딩크족'이 늘어난 것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커리어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팽배해진 탓으로 해석된다. 현재의 한국 직장 문화는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고, 하는 일에 (아이 때문에) 지장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에 덧붙여 혼인 연령이 늦어지면서 아이를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7세, 여성 31.3세로, 2002년 남성 29.8세, 여성 27세와 비교해 볼 때 각각 3.9세 및 4.3세 올라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 결과 최근 5년(2018~2022)간 불임치료 환자는 연평균 1.2%씩, 난임시술 환자는 3.8%씩 증가하고 있다. 만혼(晩婚)으로 인해 비자발적 딩크까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인해 지속 가능성을 빠른 속도로 상실해 가는 듯해 보인다. 정부를 규탄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서 '헬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그 날'이 바로 한국인에게 '지옥'이 아닐까 싶다. 살아남기 위한 대개혁은 불가피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헬조선'은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