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기형에 또 기형?

입력 2023-11-02 15:17:26 수정 2023-11-02 20:35:50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대구에 살다 보니 '대체 대한민국에는 서울·수도권만 존재하는가'라는 현타가 올 때가 많다. 정치·경제 정책에서부터, 기업 분포, 부동산 시장 등 그 어떤 지표를 봐도 서울 중심으로만 돌아간다는 사실이 명징하기 때문이다. '지역 균형발전'은 어쩌다 한 번씩 반복되는 틀에 박힌 구호쯤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터져나온 국민의힘의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과연 지역은 안중에나 있나 하는 의구심을 키울 수밖에 없게 한다. 올 초 정부가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와 대학 정원 규제를 푼 데 이은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가뜩이나 위기에 처해 있는 지역을 고사시키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올 8월 기준 서울의 인구는 941만 명에 육박하며, 경기도는 1천362만5천 명에 육박해 전체 인구(5천155만8천여 명)의 44.7%가 서울 수도권에 살고 있다. 인구뿐 아니라 경제력으로 따졌을 때는 그냥 '대한민국=서울·수도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수도권 GRDP(지역 내 총생산)가 비수도권을 추월하고 1천대 기업의 73.4%,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83%, 100대 기업 본사의 91%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반면 지역민의 입장에서 서울 메가시티 구상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지역 소멸이 수도권 집중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줄줄이 서울·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지역의 상황이다. 반면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거난과 교통 지옥 등 삶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는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역 소멸은 인구가 줄어드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그 인구 분포 자체에도 큰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 60%는 지역에 거주하고, 226개 시·군·구 중 42%는 소멸 위험에 처한 곳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라'는 책을 쓴 차재권 부산 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일그러진 수도권 공화국'으로 질타했다.

윤석열 정부는 "사는 지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회와 생활의 격차가 생기는 불평등을 멈추고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구현하겠다"는 국정 목표로 지난 7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 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을 발표한 바 있다. 2일에는 기회발전·교육·도심융합·문화 등 4대 특구를 통해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방 특별법은 정부가 법적으로 지방정부에 지원하도록 돼 있는 지방교부세를 일방적으로 삭감하면서 이미 그 취지가 무색해질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 침체가 이어지며 세수 결손분이 12조 원에 달하자 이를 지자체가 떠안아야 할 형편인 것이다.

여권은 세계의 주요 도시 트렌드가 메가시티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나 중국 베이징처럼 수도가 주변 도시를 끌어들이는 경우보다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과 경쟁하기 위해 지방 도시가 몸집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5 오사카월드엑스포를 공동으로 준비하는 일본의 '간사이 광역 연합'이나, 슈투트가르트가 주도해 인근 6개 지역을 광역 연합으로 묶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독일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이미 기형적인 구조를 더 강화해 문제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게중심 형성에 힘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