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경계 없는 예술'을 표방하고 있는 2023 세계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스파프, 예술감독 최규식)의 작품 주제들과 축제를 통한 질문들은 대체로 예술과 기술(technology)의 관계와 융복합, 동시대 정치, 문화, 사회, 전쟁의 인식과 역사성, 트랜스 휴머니즘(transhumanism)적인 예술적인 경계들과 포스트 휴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후 위기 시대에 대한 탐구와 질문들로 이루어지는 컨템퍼리적인 작품들이었다. 올해 23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 무대 메커니즘의 표현형식이 발전적으로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들을 몇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작품 중에는 데드 센터의 부시 무카르젤(Bush Moukarzel),벤 키드(Ben kidd) 공동연출 <베케트의 방>(Beckett's Room)이 관객과 연극 전문가들의 평가가 높았다. 최석규 예술감독은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그동안 확신해 왔던 기존 예술 관념 체계의 경계를 허무는 것, 그 질문들을 동시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관점의 예술작품으로 만나게 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28일에는 서울연극센터에서 <베케트의 방> 작품설계 과정과 창작 세계를 데드센터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부시 무카르젤과 벤 키드가 공동 설립(2012)한 데드 센터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11년째 전 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공연프로젝트는 15개 작품을 진행해 오고 있다. <수브니르>(2012, 더블린 프린지 페스티발), <리피>(2013), <(S)quak!>(2013), <체홉의 첫 번째 연극>(2015), <햄 넷>(2017) 등의 대표 작품이 있다. <베케트의 방>(2019)은 아일랜드 더블린 공연 축제 초연 이후 데드센터의 대표작이 되었다.
◆데드센터의 창작작업과 공연프로젝트
두 연출자 (부시 무카르젤과, 벤 키드) 창작작업의 방식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적인 방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첨단기술을 무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 질문을 하고 프로젝트 실행으로 옮긴다. 그러면서도 연출자는 '우연'과 '본능'에 이끌려 다양한 공연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고 겸손한 자세로 밝혔다. 우선 극장의 개념을 기술을 사용하는 장소로써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장과 연극을 기술로 인식하고 있다. 극장을 재현과 무대 배치의 공간적인 개념으로 인하지 않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계로 바라보고 있다. 극장은 소리와 빛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기계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접근해 연극이라는 기계를 무대에서 어떻게 작동시키고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한마디로 데드센터의 '첨단무대 사용 설명서'인 셈이다. 스토리(이야기), 감정이입과 생각, 느낌을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분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한테 전달 할 수 있는 기계라는 것이다.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면 세상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연극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지점에서는 공감했다. <베케트의 방>은 '비가시성'을 무대 기술로 표현할 수 있는 실험적인 방식과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고민하다 보여질 수 없는 연극, 배우들이 보이지 않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일주일 동안 가능성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베케트의 조카로부터 '베케트의 첫 번째 연극'을 공연 제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메일 통보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도 프로젝트 개발단계의 과정을 비디오 영상으로 전달하며 "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비디오카메라"라며 젊은 예술가들은 반드시 모든 제작 과정과 기록을 비디오 영상으로 해둘 것을 제안한다. <베케트의 방>은 수백 년 된 인형극의 기술을 사용했다. 무대 바닥과 모든 벽의 구멍을 내 기술 장치들을 연결했다. 배우는 보이지 않으면서 사물 이동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인형극 전문기술자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을 구성했다. <베케트의 방>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은, 관객들이 헤드폰을 착용하고 공연(쇼)을 바라보기 때문에 사운드 디자인과 목소리는 바이노럴 레코딩(Binaural recording)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뇌를 자극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 경험처럼 3D 사운드로 제작된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대화, 내레이션의 입체적인 구현을 시도했다. 그런 만큼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은 헤드폰을 착용한 뒤 무대에서 스트리밍처럼 구현되는 장면에서 영화관에 있는 것처럼 3D 사운드의 입체적인 소리와 장면들이 무대에서 일어나는 등장인물들의 동시적인 소리처럼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간혹 소리 증폭의 강도의 균형이 무대에서 일어나는 매직 같은 현상들과 소리 입체감을 반감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연출자는 <베케트의 방>은 배우가 없는 쇼라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연출자 소리에 집중되었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레지스탕스 일원이었던 2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생활한 이야기로 아내 수잔 데슈보 디메닐과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세트 디자인은 매우 사실적인 무대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들리면서도 배우(등장인물)의 형체는 보이질 않고 비어 있다. 관객은 헤드폰 착용 상태로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공간을 이동하며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된다. 관객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유령들이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무대장치와 소품들이 움직이는 현상들을 보게 된다. 보이지는 않는 인물의 형체들 사이로 소리가 증폭되면서 몰입하게 된다. 부재하면서도 존재하는 것처럼 공간의 착시적인 감각과 느낌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헤드폰으로 소리를 인지하면서 역설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등장인물이 3D 기술처럼 가깝게도, 멀게도 느껴지게 된다.
◆ 부재에 관한 <베케트의 방>
<베케트의 방>은 부재에 관한 작품이다. 무대는 비어 있으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곳에 있지 않으면서도 존재해 있는 '부재와 존재'에 대한 형식의 아이디어가 무대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작동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상디자인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작업으로 보였다. 보이지 않지만, 그림자를 통해 베케트와 수잔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거울이나 유리를 통해 비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무대에 누가 있을 것인가. 어떤 관객이 오는가"라는 질문도 하게 되면서 "무대에 누가 있지 않을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아이디어가 <베케트의 방>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작업방식이 되었다. 무대에서 어떠한 방식과 기술효과로 '부재'를 표현하고 만들지 팀들과 지속적인 작업이 무대에서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연극(쇼)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연출가는 " 이 작품에서 완전히 사람들을 없앴지만, 일반 공연과 제작 과정은 비슷하다" 말했다. 데드 센터의 두 연출자는 리피(LIPPY, 2013) 작업에서 기술적인 속임수를 통해 목소리를 녹음하고 립싱크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작업 경험을 소개했다. 무대의 부재를 위해 비디오 영상디자인을 사용한 창작 과정과 사람이 무대에 있으면서도 있지 않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탐구해 등장인물에 대한 관객의 관습적인 인식과 감정의 변화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연구했다고 한다.
'햄 넷'에서는 라이브 카메라가 동원되고 촬영된 영상으로 11살에 사망한 셰익스피어의 외아들인 '햄 넷'과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과정을 설명했다. 스크린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무대에 있는 배우가 동시적으로 현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기술의 융합과 접근방식은 연극과 극장을, 기계를 작동시키는 구조로 인식하고 있는데 있는 것 같았다. 기계는 첨단기술과 맞물며 프로젝트들이 작동되고 있다. 이처럼 데드센터의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표현방식은 어떤 것을 무대에서 부재시키고 기술로 대체해 존재시킬 것인가에 대한 실험적인 방식이다. 연극이 인터넷으로 실시간 스트리밍되는 시대에 티켓 판매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연출자들은 생각을 전환한다. 라이브 극장과 라이브(현장)의 연극적인 감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온라인 라이브 극장을 개발하고 관객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데드센터는 연극의 현장성 있도록 라이브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은 스트리밍 되는 영상을 관람하고 채팅 기능을 사용해 공연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고 관객이 극 중 인물로 개입할 수 있는 무대 현장의 라이브 성을 그대로 살리는 실험을 했고 앱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 OTP, 영화, 드라마는 클릭과 터치 한 번으로 재생되는 시대에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데드센터는 관객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연극의 특성상 미래 관객을 연극으로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지와 공연이 기술을 활용한 쇼라는 관점에서 비즈니스로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연극을 영화와 연극적인 라이브 요소를 갖춘 하이브리드 쇼로 만든 경험도 흥미로웠다, 연극으로 VR 체험도 하고 관객이 이야기를 업로드 할 수 있는 < 투 비 어 머신>(To Be a Machine) 프로젝트 작업은 위기의 시대에 연극이 생존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는 기분이 들었다. 핵심은 연극을 기술로 바라보고 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드센터의 두 연출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 연극이 발명되었을 때는 혁명적이었어요. 연극은 과거에 집착하는 특성이 있어 경계해야 합니다. 고전 연극과 고전 텍스트가 종종 공연되면 관객들은 연극이 더 이상 쓸모없어질 거라고 걱정하기도 하죠…. 그러나 연극은 현재와 과거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극이 현재가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에 저는 마음이 놓입니다. 새롭게 변화되는 기술은 우리 생활에 깊게 박혀있어요. 현대적인 경험을 융합할 수 있도록 어떠한 예술 형태이든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연극의 오래된 전통 방식의 기술과 현대적인 기술을 혼합해 연극이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데드센터 연출가는 대기업 반도체 회사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며" 혁신과 변화를 내세웠던 것처럼, 연극의 형식도 끊임없이 연극의 독창적인 형식을 살리면서도 변화가 이루어졌을 때 생존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관객을 설득할 수 없는 무대의 생존은 관념적인 예술가의 방식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재, 방의 존재
역사의 시간은 과거로부터 부재(不在)하면서도 현재로 존재(存在)하고 있다. 우리는 부재한 역사로부터 역사적 진실을 탐색하고 새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연극 예술도 역사적 맥락에서 진화해 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조건을 서술하고 있는 '시학'은 수천 년 동안 연극예술을 지배하면서도 현대연극은 배우, 극장, 텍스트, 플롯, 관객, 기술과의 사이에서 유기적인 작품 관계를 형성해 왔다. 텍스트(희곡) 중심의 재현적 전통 방식은 연출가들에 의해 해체되고 재현의 미학성을 무대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우회해 실제의 현실과 현상을 투사하는 포스트 드라마 시대에 있어 연극의 형식과 구조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연극은 다양한 장르의 혼종 방식으로 공연되고 있다. 4차 혁명 시대에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인공지능과 로봇, 챗GPT까지 무대로 소환해 실험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전환의 시대에 데드 센터의 부시 무카르젤( Bush Moukarzel)과 벤 키드(Ben kidd) 공동 연출한 <베케트의 방>(Beckett's Room)은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혁신적인 공연이면서 등장인물들의 부재를 통해 비가시성의 현존을 들어내는 작품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Godot)가 부재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그 존재를 믿고 있는 것처럼.
연극은 베케트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사물(물체)의 이미지. 정지, 숨, 침묵, 사이, 부조리한 대화들의 특징을 살려내면서 베케트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희곡을 구상했을지도 모를 <베케트의 방>이 무대배경이다. 그가 방에서 유령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세계 2차대전의 전쟁의 역사와 죽음, 나치의 잔혹한 폭력성이 세계의 현재시간에도 베케트의 방에서 일어난 부조리한 모순과 현상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 중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태로 포로가 되어 나체로 끌려간 이스라엘 여성은 참수당했고, 팔레스타인 영토를 사이에 두고 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베케트의 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역사로 박제된 부재한 시공간이 아니며 여전히 전쟁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입장부터 헤드폰을 착용하게 된다. 헤드폰을 통해 등장인물의 대화, 사물의 움직임, 이동의 효과음을 듣게 된다. 무대는 2층 구조 세트로 되어 있는 프랑스 파리의 가정집이 무대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저항한 사무엘 베케트와 그의 아내 수잔 데슈보 디메닐과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Gestapo)를 피해 정보를 수집해 번역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작전을 수행한 장소인 베케트의 방이 무대의 배경이 된 것이다.
좌측으로는 낡은 탁자와 타자기, 의자, 책들과 라디오 등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는 2층으로 연결되는 목재 계단이 있다. 2층에는 서양식 구조의 화장실과 세면대 거울 등이 보인다. 1층 우측은 순무와 당근이 있는 주방과 냉장고가 보이고 출입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관객은 베케트의 방 구조를 응시하게 되고 등장인물은 유령처럼 형체가 드러나질 않는다. 인물들의 행동과 상황, 사물과 유기적인 관계, 대화와 장면의 상황들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헤드폰으로 툭툭 들려오는 성우들의 내레이션, 인물의 소리와 대화, 방문자 소리의 감각들이다.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면서 장면을 연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혹은 개인 방과 집에서 경험한 일들이 자신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상황들이 재현되는 현상을 VR로 경험하는 느낌으로 상상하면 될 것 같다. <베케트의 방>에서는 등장인물과 배우들의 실체를 볼 수 없다. 물을 마시고, 냉장고를 열고, 입구 문이 열리며 움직이는 사물과 가구와 소품들의 무대장치 이동만 보이는 매직 퍼포먼스처럼 현상을 드러내고 배우는 유령처럼 보이질 않는다. <베케트의 방> 이야기는 사무엘 베케트와 수잔이 2차 세계대전 중 1942년도 파리에 있을 때 이야기다. 스토리는 3개의 에피소드(막)로 구성되어 있다.
◆'존재와 부재' 사이의 <베케트의 방>
자막으로 1막, '1942년 파리(End)'로 표기된다. 흥미로운 것은 베케트를 연상 할 수 있는 한 등장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인물이 탁자에 앉아 타자기를 치고 있다. 타자기는 "타닥, 타 탁, 드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종이도 날아다닌다. 주방의 쪽에서는 물이 끓는 듯 주전자는 주둥이로 수증기를 내뿜고 발걸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따라가면 누군가 들고 있는 컵으로 물을 따르며 사물이 움직이며 인형극 기법들이 기술적으로 <베케트의 방>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비디오 영상, 3D 음향과 입체사운드, 사진 이미지들이 현대기술의 입체적인 방식의 서사로 무대로 융합된다. 샤막으로 가려진 무대에서 베케트의 방을 배회하는 사물 (인형) 조정자들은 형체가 드러나지 않게 검정 복장으로 가려져 특수장비를 동원해 매직박스처럼 와이어를 바닥과 벽에 연결해 사물의 이동과 움직임을 드러내는 기법들이 활용되는데, 등장인물이 부재해 있으면서도 존재해 있는 착시적인 현상을 느끼게 된다. 화장실 거울과 창가 유리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그림자(이미지)들이 희미하게 반사된다. 수잔과 베케트의 존재가 여전히 그 아파트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리를 점령한 나치들을 향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베케트와 수잔의 시대적 저항은 소멸하여 부재한 것이 아니며 역사의 시간은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1막부터 레지스탕스 일원으로 베케트와 수잔이 초조함을 들어낸다. 문이 열리는 소리, 가까워지는 발소리, 누군가 엿 보고 있는 것 같은 응시의 시선으로 불안감이 증폭되고 실핏줄로 인간의 동공만이 클로즈업된 시선들을 교차시키며 보여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나치의 폭력성과 전쟁의 잔혹한 역사를 응시한다. 대화는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이다. 게슈타포 감시를 의식하는 불안감에 두 사람은 섹스하면서 중단하기도 한다. 수잔은" 누군가 우리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아."라는 대화가 헤드폰으로 전달될 때쯤, 마치 관객은 게슈타포의 시선으로 두 사람 대화를 듣고 있는 것 같아진다. 베케트의 방에 설치된 도청 장치를 통해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의 역사적인 대화를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막에서는 두 사람이 레지스탕스 일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해 프랑스 남부로 도피하기 이전까지의 시간을 보여준다.
◆지울 수 없는 죽음과 전쟁의 기억
2막은 자막으로 (중간,middle)으로 표기된다. 베케트와 수잔이 떠난 뒤의 집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베케트의 빈방은 평화의 적막처럼 느껴진다. 전쟁과 인간의 잔혹한 죽음은 예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을 게슈타포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평화의 적막을 깨는 것처럼 레지스탕스 요원이 고문과 총살을 당하는 장면들이 보인다. 게슈타포는 독일어로 말하다 "우리가 만약 전쟁에서 진다면 영어로 말하게 될 거라며"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연출한다. 게슈타포의 상관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2층 화장실로 올라가 있는 사이 게슈타포는 베케트의 방에 있는 포로의 혀를 자르고 상관은 포로 머리로 총알을 당긴다. 그림자극처럼 투사되는 장면의 잔혹성과 죽음, 전쟁은 고요한 베케트의 빈방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2막 중간이 끝나는 시점에 영상은 동공을 확장한다. 그 응시의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라져간 전쟁 참전 군인들과 병사들 그리고 피난민들의 초조함이 사라지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텅 빈 거리만이 비친다. 전쟁은 그 평화로부터 존재하는 것처럼. 적막은 전쟁으로 균열되어 가는 현재의 시간이다. 동공의 시선은 역사의 시간으로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의 역사 기록을 지울 수 없는 시선이면서도 전쟁으로 인한 공포가 지속하고 있는 불안감이다.
2막은 숨은 그림을 찾아가듯 상당히 베케트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게슈타포 장교가 베케트 방을 수색하며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그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하는 대사들을 느낄 수 있다. 부재한 베케트 사이로 장교와 병사의 대화를 연극적인 장치로 활용시키며 베케트의 철학을 연결하는 장면에서는 부재하면서도 존재하고 있는 베케트처럼 매우 부조리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게슈타포 장교가 "베케트를 기다리며"(Wait for Beckett) 라고 말하는 장면, 당근과 순무만이 허기진 전쟁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설정이 그렇다. 두 명의 나치와 게슈타포 포로 한 명은 '고도를 기다리며' 포조(Pozzo), 에스트라공(Estragon), 럭키(Lucky) 등장인물을 연상하게 한다. 포로는 럭키처럼 말하지 못하고 줄로 묶여있다. 나치군인 한 명이 베케트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심문하고, 말 못 하는 그를 향해 '돼지'라고 부르고 '진격'이라고 말한다. 다른 군인은 "안돼, 진격할 수 없어"라고 소리치는데 나치 장병과 병사가 기다리는 것은 에스트라공과 포조의 '고도'가 아니라 사무엘 베케트다. 장교와 병사의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과 인간의 죽음은 신으로부터 구원되어야 하는 1막 '끝'이 아니라 3막 '시작'(Beginning)으로 되돌아가 히틀러의 전체주의 이념과 폭력성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3막은 베케트와 수잔이 베케트의 방으로 돌아오는 1945년 2월이다. 1막의 끝(End)과 2막의 중간(Middle)으로 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3막 <베케트의 방>은 여전히'끝'이 아닌 2차 세계대전과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베케트의 방>은 전쟁이 끝난 것처럼 고요하고 방에서 죽어간 프랑스 포로의 죽음의 체온만 느껴진다. 2막에서는 베케트와 수잔 그리고 집을 방문한 친구와 전쟁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수잔은 되돌아온 베케트의 방에서 총으로 살해당한 포로 병사를 봤다고 말한다. 전쟁의 탄환으로 잔혹하게 죽은 남자를 기억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2막 중간(Middle)의 시간에 베케트의 방에서 존재하며 죽음을 마주한 것처럼 설정된다. 그러나 등장인물 모두 베케트의 방에서 유령처럼 부재하면서도 존재하는 이야기로 인식된다면 수잔이 기억하는 전쟁의 죽음의 환기는 치유되지 못한 역사이자, 반복되고 있는 현실로 인지 할 수 있다. 수잔의 기억은 소멸한 부재의 기록이 아니며 동공으로 응시해야 할 현재이다. <베케트 방>은 베케트의 부조리한 희곡구조처럼 1막부터 3막까지 연결하면서 인형극 적인 기법과 배우가 존재하지 않는 무대, 3D 사운드, 영상과 이미지들을 융합한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전쟁과 죽음은 실핏줄로 균열되어 있는 눈의 동공으로부터 치유될 수 없는 전쟁의 시간이면서도 수잔처럼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는 부재의 역사적 시간이 되면서도 기억으로부터 존재하는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연출은 2차 세계대전과 전쟁의 역사가 재생되어 반복되지 않도록 4차 혁명 시대에 변화되는 연극의 형식으로 진화시키고 발전시키며 전쟁 없는 세계를 향해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동연출자 부시 무카르젤과, 벤 키드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포조 같고 전쟁은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베케트의 순무와 당근을 놓고 벌이는 싸움 같다. 이것은 이념의 식욕을 채울 수 없는 허무한 싸움이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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