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된 권리, 악성민원] "'생활지도 가이드라인' 현장 잘 안착해야"

입력 2023-10-30 15:54:19 수정 2023-10-31 17:33:02

지난 9월 4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앞 분수광장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9월 4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앞 분수광장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최근 교권 침해로 인한 교사들의 분노가 높아지면서, 정치권에서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1일 교권 보호 4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올해 2학기부터는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고시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학교 현장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고, 여전히 교사들이 아동학대 신고 위험에 노출돼 있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제도 시행에도…악성 민원 못 막아

교육부는 지난달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시행하면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을 방지하고자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일례로 학부모가 교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더라도 ▷사전에 일시 등이 합의되지 않은 상담 ▷보호자의 폭언 등이 있는 경우 상담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 대응 과정에서 이를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대구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는 "상담을 위한 사전 협의는 여전히 안 이뤄지고 있다. 보통 학부모들은 학교에 전화를 걸어 '몇 학년 몇 반 담임을 바꿔달라'고 하지, '언제, 어떤 건으로 상담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며 "교무실에서도 '무슨 일 때문에 연락을 원하는지' 안 물어보고 바로 담임한테 전화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 민원이 100건 들어오면 95건은 해결되고, 해결 안 되는 나머지 5건의 악성 민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악성 민원은 결국 담임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상담을 도중에 거절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교사 B씨는 "요즘은 학부모들도 녹취가 되는 걸 알기 때문에 다짜고짜 욕설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보통 악성 민원은 화가 난 학부모들이 장시간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 중 퇴근 시간이 됐다고 해서 '이제 전화를 끊겠다'고 말할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학부모가 화가 나 일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정서적 학대' 신고 우려 여전

교사들은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할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교원 단체들은 교사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으려면 '정서적 학대'를 규정한 아동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 C씨는 "생활지도 가이드라인이 실시됐지만 여전히 학생 지도가 힘들고 교실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며 "학부모로부터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고,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은 여전하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에 따라 적극적으로 지도는 못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례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은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했지만, 외부에 있는 학생을 돌볼 인력이 누구인지 아직도 공지가 없었다. 교실 밖에 있다가 안전사고가 나면 책임은 담임에게 돌아온다"며 "또 교실 밖으로 내보낸 과정을 문제 삼아 학부모가 정서적 학대를 문제 삼을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 단체에선 교사에게 민원 필터링 과정에 평가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학교 민원 대응 매뉴얼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보미 대구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학교로 들어오는 민원 필터링 업무를 담당하는 주체들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권리를 교사에게 부여해야 한다"며 "평가권이 없다면 예전처럼 바로 교사에게 민원을 넘겨버리는 등 민원 방지를 위해 마련한 체계가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