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얼마 전 한 사건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다. 사건의 발단은 '고속버스 민폐녀'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영상이 올라오면서부터였다. 고속버스 앞자리에 앉은 한 여성이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힌 채 거의 누워있고, 뒷 승객은 앞 등받이에 다리가 눌려 불편해하는 모습과 함께 접어달라는 버스 운전기사의 부탁에도 버티고 있는 영상이 담겼다. 처음부터 의자를 그렇게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둥, 그건 승객의 자유라는 옹호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 비난 일색이었다. 이후 뒷자리 승객의 무례한 말과 행동이 원인이었다는 전후 사정이 알려지면서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가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고속버스 안에서 일어난 두 사람의 다툼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의 참뜻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자유는 개인적이다. 집단과 조직의 자유니 국가의 자유니 하는 것의 근본은 모두 개인의 자유이다. 자유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며, 정의를 비롯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가치들의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자유를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막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만일 자유가 이런 것이라면 누구나 어떤 힘(권력)을 갖게 되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된다.
자유의 참뜻은 강제가 없는 상태이다. 즉, 다른 사람의 자의(恣意)에 영향을 받거나 지배되지 않고, 누구도 내 결정과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는 생명, 재산과 함께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갖는 권리이다. 시민 개개인의 자유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정부 존재 이유이다. 그러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자유와 책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자유 없이는 책임도 없고 책임 없는 자유란 있을 수 없다.
자유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만 사는 것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곳에서 자유의 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여럿이 함께 살 때는 나의 자유와 함께 타인의 자유도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내게 자유가 있듯이 다른 사람도 자유가 있다. 자유는 나에게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유와 '방임'이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방임의 사회에서는 누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그의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침해는 다른 사람에 의한 강제이며,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가 방해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에는 모든 개인이 서로 침해할 수 없는 정의로운 행동규칙이 필요한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 그래서 금지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규칙이 필요하다. 이 행동규칙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차별 없이 적용되는 규칙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란 있을 수 없다. '내로남불'이 판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의 당사자를 민폐녀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아 보인다. 민폐라는 말을 쓰기에는 너무 사소한(!)일이기 때문이다. 혹자처럼 그녀를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보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이익에 관심이 있는 것이 본성이고, 과연 어느 정도를 극단적이라고 판단하는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를 사이코패스라고 몰아가는 것도 섣부른 판단이다. 정신의학자의 정밀 검사가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그녀가 사이코패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자유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무지의 결과가 그녀의 무례함이다.
돌아보니 어렸을 때부터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지만, 도대체 무엇이 자유인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예의는 특정 종교, 사상이나 철학에서 온 것이 아니다. 예의는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으로부터 온다. 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는 것을 무식(無識)이라고 한다. 무례(無禮)는 무식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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