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대구시 신청사 건립에 다시 힘을

입력 2023-10-24 20:11:11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대구시 신청사 건립이 십수 년 이상 미루어졌던 것은 갈등 관리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극적으로 해결한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대구 시민 전체가 1년에 걸쳐 숙의, 공론을 한 후 시민을 대표하는 평가단이 매듭을 지었다. 그 결론의 수용성은 놀랄 정도였다. 경쟁 지역 어디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회통합적 의사결정이었다. 시민의 이름으로 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대구시 신청사 건립은 여러 번 파란과 곡절을 겪었는데, 그럴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것도 시민의 힘이었다. 신청사를 짓지 않겠다고 한 발표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도 시민의 힘이었고, 건립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신청사 부지를 잘라 팔겠다고 한 안을 원위치시킨 것도 시민의 힘이었다. 주권자인 시민의 힘이 아니었으면 신청사 건립은 기약 없이 표류했을지 모른다.

대구시가 해결하기 힘든 지역사회 공공정책 과제를 '시민의 힘'으로, 공론 민주주의를 통해 매듭을 지었다는 것은 '신의 한 수'였다. 2021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가치 탐구와 실천'이라는 연구 프로그램에 제출된 '공론화위원회의 비판적 검토와 발전 방향'이라는 보고서는 대구시 신청사 건립 공론화가 공정, 민주, 숙의의 원칙을 잘 지킨 사례라 칭찬하고 있다. 2022년 9월, 고려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한국협상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도 대구시 신청사 건립 공론화 과정이 시민 참여 숙의민주주의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았다. 지역사회 갈등을 '시민의 힘'으로 해결한 것이 '합의 형성적 정책 결정'의 좋은 사례로 전국적 자랑이 되고 있다.

그런데 다시 시민의 힘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 문제가 다시 정치화할 가능성 때문이다. 그동안 신청사 건립이 오락가락했다. '짓겠다. 짓지 않겠다. 다시 짓겠다. 예정지를 잘라 팔아서 짓겠다. 조금만 팔겠다. 다시 팔지 않겠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최종 결론은 '시민의 힘'이 결정한 대로 건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앞으로 다시 정치 갈등으로 번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있다. 이미 한쪽에서 '꼬인 문제를 우리가 풀었다'라고 하니, 다른 한쪽에서 '꼬인 문제를 풀었다며 생색낼 것이 아니라 문제를 꼬이게 만들어 놓았던 것에 대해 사과나 해라'고 쏘아붙인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거나 커지면 결국 이를 풀 수 있는 것도 시민의 힘이다. 시민은 정치인의 파당적 이해관계에 따른 편향이나 전문가의 자기 확증 강화 경향과 달리 합리적 토론을 통해 공공선을 찾아가는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걱정거리도 시민의 힘이 필요한 일이다. 신청사 건립 비용 문제다. 이것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 문제 해결은 전적으로 시장, 시의원, 구청장, 구의원,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의 몫이다.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더 이상 책임 떠넘기기, 생색내기, 눈치 보기, 줄 서기로 시간 보내지 말고 모든 정치, 행정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시민의 힘은 정치인의 유능, 무능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구시 신청사를 짓는 일은 그냥 집 한 채 올리는 토목건축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대구 시민이 바라는 '가치'를 짓는 것이요 대구 시민의 '희망'을 짓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집이 아니라 '시민의 집'이다. 대구 시민들은 신청사가 단순한 행정 공간으로서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 공간, 소통 공간, 휴식 공간, 그리고 생태의 공간, 상징의 공간으로서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숙의,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의 힘은 이런 희망까지를 약속에 새겨 놓았다. 정치, 행정 지도자들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자원 동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부족하면 시민들이 나설 수도 있다. 가령 지역 정치인들이 예산 마련에 대해 또 고추 먹은 소리를 하거나 손 놓고 세월을 보내게 된다면 시민들이 나서서 신청사를 짓는 데 벽돌이라도 놓자. 그것을 바닥에 깔고, 벽에도 붙이고, 계단에도 쌓고, 그리고 그 벽돌마다 시민들의 이름을 예쁘게 새기자. 대구시 신청사는 시민의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빛날 것이다. 시민의 이름으로 나무도 심고 잔디도 깔자. '신청사의 순조로운 건립에 힘을 모아야 한다'라는 요청에 다시 시민들이 응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