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먼 나라에서 또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거의 실시간으로 타전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의 후손들이 2020년대의 세계사를 이야기할 때 전쟁을 메인 화두에 올리지나 않을지 지레 부끄럽기까지 하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일들 중 전쟁보다 더 잔혹한 일이 있을까? 살인에 대한 법적 책임마저 거의 없는 상태를 온몸으로 겪어 내야 하는 그 전장의 평범한 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암울하고 두려운 하루를 견뎌내고 있을지….
인간은 살아 있는 이상, 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속에서 이야기는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심지어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마션'의 주인공처럼 수만㎞나 떨어진 화성에 홀로 남겨지게 되더라도 인간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또 그 이야기에 따라 생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앞서 말한 이들, 그러니까 고립 속에서 살아간 이들이 끝내 발견되지 않고 숨을 거뒀다면 그들의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들의 삶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비행사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제 아무리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천수를 다 누리고 노환으로 숨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말과 글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일은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때만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삶이 실체이긴 하지만 그 실체는 이야기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야기는 그만큼 중요하다. 이야기 없는 삶은 없다.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전달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발전된 수단이다. 이야기는 인류가 문명을 시작하는 순간 시작되었고 문명은 이야기 속에서 전달되고 발전해 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아랍의 위대한 이야기집이 있다. 바로 '천일야화'다. 그 천일야화 속 세헤라자드는 천일 간이나 계속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자신의 목숨을 지켰다. 어떤 설득과 호소에도 꿈쩍하지 않던 임금의 무서운 법령을 허물어버린 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세헤라자드의 이야기였다. 임금은 남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신의 분노를 삭이고 다음 밤을 기약한다. 그러기를 천일, 마침내 세헤라자드는 죽지 않고 자유의 몸이 돼 살게 된다. 이야기가 그녀를 살린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전쟁을 끝내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부디 그들이 마주 앉아 한 달이든 백일이든 천일이든 이야기로 다투고 이야기로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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