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홀로 자폐 아들 돌봐야하는데…온갖 병에 기억력 감퇴까지

입력 2023-10-17 06:30:00 수정 2023-10-17 08:22:05

남편, 수면 중 심장마비로 허망하게 눈감아…정신차려보니 둘째 아들 자폐 판정
폭력성 강해지며 학교서 교우관계 갈등 자주 휘말려…엄마에게도 주먹질
정부 지원 끊겨 기초수급비로 간신히 버텨…좁은집은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지난 13일 임숙현(가명·52) 씨가 자기 집 현관문에 기대어 있다. 기억력 감퇴 및 강박관념으로 11평짜리 월세방은 늘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3일 임숙현(가명·52) 씨가 자기 집 현관문에 기대어 있다. 기억력 감퇴 및 강박관념으로 11평짜리 월세방은 늘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다. 윤정훈 기자

"자라."

그날따라 남편은 혼자 자겠다고 하며 옆방으로 갔다. 언제나 아이들을 중간에 껴 함께 자던 남편이었는데…. 아이들을 재운 뒤 가겠다고 하니 웃으면서 저리 말하곤 방문을 닫았다. 남편이 고집을 부리면 꺾을 수 없단 걸 알기에 내버려 뒀지만,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에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새벽 4시쯤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옆방 문틈 새로 푸르스름한 빛과 축구 경기 해설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것이 2시간 뒤 세상을 떠날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엄했지만 가정엔 충실했던 남편… 수면 중 심장마비로 허망하게 떠나

대학생이 돼서도 통금 때문에 밤 10시 안에 부랴부랴 귀가. 임숙현(가명·52) 씨는 그런 엄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왔다. 보수적, 철두철미, 완벽주의... 모두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22살에 전문대를 졸업한 뒤엔 지원도 칼같이 끊겼다. 그래서 액세서리·화장품 매장 판매원, 건축회사 경리, 재봉학원 보조교사 등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한창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던 25살, 친구로부터 5살 많은 남편을 소개받았다.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그는 덩치도 우락부락하고, 성격도 호탕했다. 엄한 집안에서 자라와 내성적인 자신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 점이 끌렸던 것 같다.

숙현 씨는 1년간 연애 끝에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연애 기간엔 발견하지 못했던 남편의 여러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남편은 아버지처럼 보수적, 철두철미, 완벽주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남자였다. 짜 놓은 걸레도 하나하나 각 잡아 개어 놓게 하고, 팬티 다림질까지 시켰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자식만큼은 끔찍이 여기는, 인간적인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태권도장과 병행하던 사업 때문에 지역 출장이 잦았지만, 첫째 재민(가명·23)이 태어난 뒤 아들과 함께 자야 한다며 늦은 밤이라도 꼭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홀로 모든 걸 떠안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15살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뒤 장남인 그에게 가해진 압박들이 그렇게 만든 걸 테다. 시누이를 위해 빚보증을 서주다 억울하게 빚을 지고,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도 그는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렇게 일만 하던 그는 39살에 수면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끝까지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5살 재민이는 한동안 실어증에 걸렸다. 숙현 씨도 넋 나간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야만 하는 사건이 들이닥쳐 왔다. 둘째 희민(가명·21)에게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3살이 지나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희민은 보통 아이들보다 여러 면에서 더뎠다. 그저 늦는 건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5살이 됐을 때 희민은 자폐 1급 판정을 받았다.

◆건강 나빠지는데 자폐 판정 받은 둘째 아들까지 점점 폭력적으로

희민을 학교에 보낼 나이가 되자 육아 난이도도 수직 상승했다. 희민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학교 사서교사로부터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같은 학년의 지적장애 학생 2명이 희민을 도서실 구석으로 몰고 간 뒤 마구 때렸다고 했다. 희민이 자랄수록 이런 일은 더 잦아졌다. 자폐 특성 중 하나인 반향어(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따라 말하는 것)로 인해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아 자주 다툼에 휘말렸고, 숙현 씨도 자주 학교로 불려 가곤 했다. 이 때문에 짧은 아르바이트도 곧잘 그만둬야 했다. 고2 이후론 폭력적인 행동도 늘어났다. 지난주엔 희민에게 맞아 팔에 멍이 들기도 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숙현 씨는 방 안에서 희민에게 교우관계 관련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희민은 "집을 나간다"고 소리치며 박차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려 했고, 나가지 못하게 붙잡자, 희민은 그 손을 뿌리치며 숙현 씨에 주먹질을 했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희민을 위해서라도 치료를 늘려야 하는데…. 현실은 더 각박하게 변하고 있다. 장애 치료에 쓰도록 보건복지부에서 매달 나오던 22만원 상당의 바우처 지원이 지난 8월부로 끊겼다. 생일이 지나며 희민이가 성인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 다녔던 치료센터를 2곳에서 1곳으로 줄이고, 약 타러 보름에 한 번씩 갔던 한의원도 최근에 끊어야 했다. 교육청에서 매달 나오는 12만원도 희민이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지금도 기초생활수급비로 간신히 버티는 실정에 치료를 줄이면 줄였지 더 늘릴 순 없을 것이다.

희민을 보살펴야 하는 숙현 씨 본인의 육체적·정신적 상태도 온전치 않아 더욱더 큰일이다. 우선, 숙현 씨는 허리가 선천적으로 약해 수시로 복대를 찬 채로 생활하고 있다. 여기에 1년 전부터 '방아쇠수지(손가락이 잘 안 펴지고 굽혀지지 않는 증상)증후군'까지 생겨 양손 5개 손가락에 붕대를 매고 있다. 비슷한 시기 요실금, 절박염, 빈뇨 등 비뇨기 관련 문제도 여럿 겹쳐 복용 중인 약 종류만 10개 가까이 돼 늘 약에 취해 있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다. 정신적으로는 3년 전부터 공황장애가 왔고, 이와 함께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등 기억력 감퇴 증상도 찾아왔다. 물건을 서랍에 넣어두면 잊어버리기 일쑤라 모든 물건은 다 꺼내 늘여 놓거나, 벽 같은 곳에 걸어 놓는다. 물건을 샀다는 걸 잊어 같은 물건을 또 사는 바람에 그냥 방치해둔 물건도 많다.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면 되지만 강박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주욱 월세로 살고 있는 11평짜리 투룸. 오늘도 온갖 잡동사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숙현 씨의 집이었다. 자기 집에서도 맘 편히 앉아 있지 못하는 숙현 씨는 밖에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날 때마다 문에 기댄 채 기척을 살폈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 걸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불행이 또다시 들이닥칠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막을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경계 태세를 늦추지 못하는 숙현 씨였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주)매일신문사(이웃사랑)

▶DGB대구은행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지난주 성금내역]

◆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본인도 거동 불편하고 시력 점점 떨어지는데 왜소증 걸린 첫째 딸과 가와사키병 앓고 있는 둘째 딸까지 있는 고미홍 씨에게 2,838만원 전달

남편 외도와 가정 소홀로 홀로 어렵게 자매를 키워왔는데 첫째 딸은 왜소증에 걸리고 둘째 딸은 가와사키병을 앓아 앞길이 막막한 고미홍 씨(매일신문 9월 26일자 10면)에게 2천838만8천840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에스엘(주) 200만원 ▷권오영 2만원 ▷신종욱 2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괴롭힘 못 이기고 보육원 탈출해 어린 나이부터 온갖 고생하다 겨우 가정 이뤘으나 아픈 장모님 돌보고 지적장애 아내·조카 보살피느라 고달픈 조민상 씨에게 2,632만원 성금

어린 나이부터 온갖 고생을 하다 겨우 가정을 이뤘으나 아픈 장모님과 지적장애 아내·조카를 보살피느라 고달픈 조민상(매일신문 10월 10일자 10면) 씨에게 53개 단체, 187명의 독자가 2천632만8천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권환)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성서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광명부부치과의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뉴로핏(김혜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수협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js인터네셔널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문산작명연구소(성병찬)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봄냥사무소 5만원 ▷봉란옥(이순자) 5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명산업주식회사(김재홍)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김진숙 이정추 각 100만원 ▷조성택 50만원 ▷성현탁 이신덕 진민지 각 30만원 ▷박철기 신인숙 최채령 허금주 각 20만원 ▷이지원 15만원 ▷강미혜 곽용 김순향 김준모 김지연 박매자 박미진 박선영 박진숙 박현정 유재혁 장성숙 정선나 조득환 최창규 각 10만원 ▷안정원 7만원 ▷고선영 김경호 김규리 김미애 김미희 김민경 김정란 김주도 김한숙 박서진 박정희 박종천 박지영 백미화 변대석 서정오 손승아 신광련 안대용 안현숙 엄희숙 이종하 이준우 이중훈 이진호 임채숙 전우식 정숙택 정원수 최영철 최종호 최한태 한우기 한현순 각 5만원 ▷나선희 3만3천원 ▷강길성 곽병완 권규돈 김소현 김태욱 김평섭 박현주 박희정 변현택 서은주 송성영 송정동 신금례 신장미 이대성 이미선 이서연 이석우 이옥희 이희수 임영자 임화자 장충길 전연수 조진우 조혜진 최춘희 최홍철 각 3만원 ▷이병규 이윤정 이현목 각 2만5천원 ▷권오영 김덕우 김석범 김외년 김태천 남영희 노경아 류휘열 문민성 박건우 박순화 서선희 서숙영 신일성 우철규 유명희 윤선희 이영희 이재근 이재민 이재열 이해수 정옥자 정주현 천정창 최한나 황미향 각 2만원 ▷최정원 최지원 각 1만5천원 ▷강명은 강지원 권오현 권유진 권증남 김균섭 김다영 김삼수 김성옥 김성진 김순희 김은영 김은정 김주현 박석규 박인배 박진구 박태용 박홍선 신광수 안현준 오동열 우순화 유귀녀 이선구 이영수 이운대 정동미 정서원 정혜린 정흔주 조영식 조재현 지호열 차정혜 최경철 허경숙 황성광 각 1만원 ▷가지영 권두영 김진혹 윤인주 이진기 전지원 조용인 각 5천원 ▷김현숙 손희정 안기성 각 3천원 ▷김건율 이장윤 각 2천원 ▷이현주 최연준 각 1천원

▷'사랑나눔624' '장재영(10일자기사' '주님사랑' 각 10만원 ▷'나노김동현' 7만원 ▷'이경분♡감사' '피땀눈물(로지스올)' 각 5만원 ▷'.' '고나연(조민상사' '어려운시기돕기' '어려운시기돕기' 각 3만원 ▷'석희석주' '예수님 사랑' '지영' 각 2만원 ▷'윤성 아빠' 1만1천원 ▷'반규민1009' '안지오안시우' '지현이동환이' '청명(고나배정)' '힘내세요!' 각 1만원 ▷'성금' '수민' '애독자' 각 5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