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치매 장모님 기저귀 갈아주는 사위…”가족이니까, 끝까지 돌봐야죠”

입력 2023-10-10 06:30:00

형들 괴롭힘 탓 11살에 보육원 나와…어린 시절부터 임금 떼이며 온갖 고초
'가족' 동경 커 지적장애 아내와 결혼 뒤 가정폭력 당한 처조카까지 보살펴
욕창 심한 장모님 비위관 통해 영양 공급…보조금으로 네식구 힘겹게 생활

지난 6일 14평 비좁은 임대아파트에서 조민상(가명·53) 씨가 장모님을 보살피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6일 14평 비좁은 임대아파트에서 조민상(가명·53) 씨가 장모님을 보살피고 있다. 윤정훈 기자

'언젠간 내게도 가족이 생길 거야.'

화장실 변기 위에서 보육원 형들에게 얻어맞을 때, 솥 안에 있는 밥을 훔쳐 먹다 걸려 신발가게 아저씨에게 밟힐 때, 너무 외로워서 쓰러질 것만 같을 때…. 삶이 너무 힘들 때마다 조민상(가명·53) 씨는 그렇게 생각하며 버텨왔다. 세월이 흘러 그에게도 그토록 원하던 가족들이 생겼다. 하지만 삶이 힘든 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오십을 넘긴 민상 씨는 일흔을 넘긴 장모님의 기저귀를 갈고 있다. 이후 날랜 손으로 겉기저귀, 속기저귀, 팬티용 기저귀를 나눠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하는 그. 이윽고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장모님이 어린 아이처럼 환히 웃으며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민상 씨는 그 여윈 손을 맞잡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내게는 가족이 있다.'

◆11살에 보육원 탈출… 홀로 온갖 고생 겪다 지적장애 아내 만나

부모에 대한 기억은 없다. 첫 기억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보육원에서 시작됐다. 민상 씨는 그곳 400여 명의 고아 중 하나였다. 울타리 안 생활은 전혀 안락하지 않았다. 오전 공부 시간이 끝나면 과수원으로 내몰려 해가 질 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보다 무서운 건 '형들'이었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나이 많고 힘센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괴롭혔다. 어리고 왜소한 민상 씨는 늘 그들의 표적이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어느 가을밤 11살 어린 나이의 민상 씨는 몰래 보육원을 빠져나왔다. 기세 좋게 탈출했지만 천애 고아였던 그에게 사회는 보육원보다 더 잔인한 곳이었다. 전국의 건설현장, 중국집, 김 양식장 등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나쁜 고용주를 만나 임금을 떼 먹히는 일도 허다했다. 음식을 훔쳐 먹다 걸려 10개월간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형기를 마친 뒤 대구에 있는 한 재활원으로 보내졌다. 어느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예전 보육원처럼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민상 씨는 그곳에서 무임금으로 가축 돌보는 일을 했다. 그러다 그 종교단체에서 어떤 문제가 터졌고, 민상 씨를 포함해 재활원에서 일하던 사람들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이후 근처 세차장에서 숙식 제공 일자리를 구했다. 비좁은 방에 직원 9명이 자고, 임금도 허구한 날 못 받았다. 이곳 생활 역시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이 세차장은 민상 씨에겐 뜻깊은 곳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를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민상 씨보다 3살 어렸던 친구는 세차장 단골 손님이었다. 그는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던 민상 씨를 기꺼이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해줬다. 거기서 얹혀사는 동안 친구의 아버지와도 알게 됐다. 친구의 아버지는 "장모님 댁에 괜찮은 아가씨가 있다"며 민상 씨에게 아내 김원아(가명·44) 씨를 소개해줬다. 오리고기 식당에서 처음 본 원아 씨는 조용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민상 씨는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으므로, 그거면 충분했다.

이후 만남을 이어오던 중 원아 씨에게 정도가 심한 지적장애가 있음을 알게 됐다. 장인어른은 리어카를 끌며 고물을 주우러 다니고, 장모님도 동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쓰레기 줍는 일을 하시는 등 그의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 또한 알았다. 하지만 이미 애정이 커질 대로 커진 상태라 이 모든 건 상관없었다. 가난 탓에 2번 연기가 됐지만 두 사람은 3년 동거 끝에 200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결혼식을 올렸다. 민상 씨는 고물상 일을 하며 장애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아내와 가난한 장인, 장모를 홀로 부양했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남들 눈엔 비참하게 보이겠지만, 민상 씨는 오히려 행복했다. 언젠가 가정을 이뤄 북적북적하게 살고 싶다는, 보육원에서부터 품어왔던 바람을 이뤄서였다.

◆결혼 후 지적장애 처조카까지 떠맡아… 치매 걸린 장모까지 수발

자식까지 낳고 싶었지만, 그럴 여건이 안돼 포기했다. 그 대신 민상 씨는 처조카 정시은(가명·27씨)를 맡아 초등학생때부터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시은 씨 또한 아내처럼 정도가 심한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은 씨의 친부는 치료는 못해줄망정 딸을 상대로 가정폭력을 저질렀다. 보다 못한 민상 씨는 시은 씨를 데려와 친자식처럼 지극정성으로 길렀다. 민상 씨 덕에 시은 씨는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이후에도 시은 씨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기 위해 각종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그 덕에 시은 씨는 방직공장, 찜닭집 등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시작한 지 1~3일 만에 잘렸다. 말귀도 못 알아먹고, 동작도 느리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시은 씨는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원래도 고단했던 민상 씨의 삶은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점점 한계까지 치닫고 있다. 우선 민상 씨는 고물상 일을 하면서 무거운 물체를 많이 드는 바람에 2011년부터 척추측만증을 앓아왔다. 허리 통증이 심해 제대로 앉지도 못해 한쪽 무릎만 꿇은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야 한다. 고물상 일을 하지 못한 것도 10년이 넘었다. 결국 2014년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세가 됐다. 2018년엔 지병 악화로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장모님이 치매 1등급 판정을 받았다. 기침만 하면 피 섞인 가래를 쏟는 등 폐에도 문제가 생긴 와중에 코로나19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지난 4월 겨우 눈 뜨기도 했다. 여기에 욕창까지 생겨 24시간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한다.

병원에선 장모님을 요양병원으로 보내라고 조심스레 권유했다. 그럴 순 없었다. 아프고 망가졌어도 가족이니까, 끝까지 제 손으로 보살피고 싶었다. 민상 씨는 자기도 힘든 몸이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장모님 보살피는 데 쓰고 있다. 장모님 코에 삽입된 위관을 통해 우유를 먹이고, 직접 장모님 기저귀를 갈며 대소변 처리를 한다. 병원 모시고 가기, 약 타오기 등도 모두 민상 씨 일이다. 오랜 수발로 마음마저 병들었다. 돈 걱정이라도 안 하고 싶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조카 시은 씨의 경우 가족(부친)의 동의를 받지 못해 생계급여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민상 씨와 아내, 그리고 장모님 몫으로 나오는 정부보조금 145만원 남짓한 돈으로 네 식구가 생활해야 한다. 여기서 장모님 먹일 우윳값, 영양제 등으로만 매달 40만원이 나가고, 기저귀도 한번 살 때만 최소 15만원이 깨진다.

오늘도 민상 씨는 장모님 수발에 여념이 없다. 부쩍 야윈 장모님이 아기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워있다. 장모님 전용 침대 하나로 꽉 차버린 14평 임대아파트 거실 한편엔 아내와 조카가 구겨진 채로 우두커니 앉아있다.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빛이, 그토록 바라왔던 가족이란 울타리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민상 씨였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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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아픈 엄마 위해 의사되겠다는 아들 뒷바라지 해야 하는데 무릎인대 파열로 수술 받아 부엌 가는 것조차 버거워진 박항선 씨에게 2,466만원 전달

아픈 엄마를 위해 의사가 되겠다는 아들을 뒷바라지 해야 하는데 무릎인대 파열로 수술 받아 부엌 가는 것조차 버거워진 박항선 씨(매일신문 9월 19일자 10면)에게 2천466만2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이신덕 30만원 ▷이진술 5만원 ▷최종호 5만원 ▷강민주 3만원 ▷이서연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박종천 2만원 ▷신종욱 2만원 ▷조혜란 2만원 ▷최선태 2만원 ▷김경진 1만원 ▷김종식 1만원 ▷김태상 1만원 ▷민생일 1만원 ▷박미화 1만원 ▷박태용 1만원 ▷한정화 1만원 ▷류시배 5천원 ▷문민성 5천원 ▷이순덕 5천원 ▷조철제 5천원 ▷이장윤 2천원 ▷심금자 1천원 ▷'범물동김선우' 10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본인도 거동 불편하고 시력 점점 떨어지는데 왜소증 걸린 첫째 딸과 가와사키병 앓고 있는 둘째 딸까지 있는 고미홍 씨에게 2,634만원 성금

남편 외도·가정 소홀로 홀로 어렵게 자매를 키워왔는데 첫째 딸은 왜소증에 걸리고 둘째 딸은 가와사키병을 앓아 앞길이 막막한 고미홍 씨(매일신문 9월 26일자 10면)에게 56개 단체, 175명의 독자가 2천634만8천84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10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8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6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4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40만원 ▷㈜태린(김영곤)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2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2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2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 10만원 ▷베드로안경원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10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동산내과 (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 (박준석)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세무사이수영사무소 5만원 ▷연합광고 (김천수)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현대전산인쇄(주)(이기복) 5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보성카써비스(김영수)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투인(이지연)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태릉표구화랑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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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나눔624' '주님사랑' 각 20만원 ▷'명수슬기준서' '피땀눈물(로지스올)' 각 5만원 ▷'석희석주' 4만원 ▷'세모녀도와주세요' '해만진주이안' '현' 각 3만원 ▷'어려운시기돕기' '지현이동환이' 각 2만원 ▷'시은' '반규민111009' '어려운시기돕기' '어려운이웃후원' '한동엽 기부' 각 1만원 ▷'어려운시기돕기' 5천930원 ▷'지성이' '채영이' 각 4천원 ▷'어려운시기돕기' 2천110원 ▷'어려운시기돕기' 1천원 ▷'어려운시기돕기' 500원 ▷'조금이라도돕기' 3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