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괴뢰(傀儡)

입력 2023-10-04 19:58:14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중화민국국민정부'. 장제스(蔣介石) 정부의 국호 '중화민국'에 '국민정부' 넉자를 붙인 친일 매국 정권이다. 최악의 한간(漢奸·친일 매국노)으로 지금까지 지탄받는 왕징웨이(汪精衛, 본명은 왕자오밍〈汪兆銘〉)가 1940년 3월 30일 세웠다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틀 뒤인 1945년 8월 17일 해산했다.

2차 대전 당시 이런 짝퉁 정부가 여럿 있었다.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만주국, 나치의 프랑스 점령하에서 남프랑스를 통치했던 비시 정권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해 세운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제국'(1936~941년), 일본의 지원하에 몽골판 친일파 데므치그돈로브가 내몽골에 세운 '몽강(蒙疆)연합자치정부'(1935~1945년), 일본이 중국 화북 지역을 장제스의 영향권에서 분리하기 위해 세운 '기동방공자치정부'(冀東防共自治政府, 1935~1938년) 등도 있다. 이런 매국 정권을 보통 '괴뢰(傀·허수아비, 儡·꼭두각시) 정권'이라고 부른다.

괴뢰는 나무나 흙으로 만든 인형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말로는 '꼭두각시'이다. 이를 움직여 극으로 만든 것이 꼭두각시놀음, 한자어로는 괴뢰희(傀儡戱)이다. 여기서 '남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나 조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괴뢰의 의미가 확장됐고 그 연장으로 '괴뢰국'이란 조어(造語)가 나왔다.

남한 정부는 한때 북한 정권을 '북괴'라고 불렀지만 오래전에 공식 호칭에서 이 표현은 사라졌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남한을 괴뢰라고 부른다. 지난 7월 12일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시험 발사를 현지 지도하면서 "남조선 괴뢰 역도"라고 했고, 이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 연설을 보도하면서 "윤석열 괴뢰 역도"라고 했다.

북한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준준결승 남북한 대표 팀 간 경기를 전하면서 우리 팀을 '괴뢰 팀'이라고 지칭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폭언이다. 그동안 북한은 스포츠 경기에서 맞붙은 남한 팀을 '남조선 팀'으로 표기해 왔다. 문재인 정권과 달리 윤석열 정부가 정치·군사를 포함, 전방위적으로 단호한 대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데 대한 당혹감이 '괴뢰 팀'이란 단어 선택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