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교차로 실크로드] 키르기스스탄 바라사군 유적지

입력 2023-10-04 13:44:24 수정 2023-10-04 18:50:52

1천년 흥망성쇠 속에 굳건히 버틴 '초원 위의 등대'
부 라나 탑.고고학, 건축학적 가치, 유네스코 세계유산
발발 석인상,투르크 계열 유목인 거주지역에 분포

실크로드의 길목인 키르키스탄 바라사군 유적지에 우뚝 서 있는
실크로드의 길목인 키르키스탄 바라사군 유적지에 우뚝 서 있는 '부라나 탑'은 약 1천년 전에 세워진 원통형 첨탑이다.

옛날 옛적 키르키스탄에 강력한 왕이 있었다. 그는 어린 외동딸을 유난히 귀여워했다. 왕은 공주의 운명을 알고 싶어 유명한 예언자를 불렀다. 그녀는 거미에 물려 죽을 운인데 16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두려움을 느낀 왕은 공주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높은 탑을 쌓아 꼭대기에서 살게 했다. 특별경호와 동시에 항상 조심하였으므로 적에 의해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하인들도 그녀에게 음식과 물을 가져왔을 때는 물론 내용물과 옷을 살피며 확인했다. 그녀가 16세를 넘기는 생일날, 왕은 그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뻐했다. 직접 딸에게 가서 축복하고 과일바구니를 선물했다. 너무 황급히 움직이다가 그 속의 포도송이에 독거미가 숨어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딸이 과일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거미가 물었고 공주는 죽고 말았다. 슬픔에 휩싸인 왕은 탑을 세게 두들기며 울부짖어 탑의 윗부분이 부서졌다고 한다.

◆초원의 등대,부라나 탑

오늘날 키르키스탄 바라사군(Balasagun) 유적지에 우뚝 서 있는 '부라나 탑'과 연결된 이야기이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식쿨 호수로 향하는 실크로드의 길목에서 이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부라나 탑의 전설과 흡사한 내용이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에 세워진 처녀탑에 있다. 처녀탑에서는 공주가 독사로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전설은 고대 로마에도 있다고 하니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 고대 사람들이 왕래했고 전설도 전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부라나 탑은 비슈케크에서 60km 정도 떨어진 톡목시 인근에 있다. 도시이름은 키르키스어로 망치를 뜻한다. 11세기경 세워진 원통형 첨탑은 천문대와 전망대, 방어용 망루, 기도시간을 알리기도 하고 먼길을 이동하는 실크로드 대상들을 위한 등대의 기능 등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탑의 높이는 24미터, 원래 45미터였던 탑의 상단부는 15, 16세기의 지진으로 붕괴됐다고 한다.

부라나 탑의 외벽은 붉은 벽돌로 띠를 둘러 기하학적인 무늬로 장식했다.
부라나 탑의 외벽은 붉은 벽돌로 띠를 둘러 기하학적인 무늬로 장식했다.

1974년 복구작업이 있었고 외벽은 붉은 벽돌로 띠를 둘러 기하학적인 무늬로 장식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후에 만들어진 다른 미나렛 첨탑들의 제작에 표준형식으로 사용되었다. 부라나 탑을 포함해 바라사군 유적지 일대는 고고학, 건축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유적지 입구에 녹색 철망으로 만든 둥근 통이 놓여있어 눈길을 끌었다. 플라스틱 분리수거 장치인데 특이한 모습이어서 자세히 둘러보니 KOICA라는 영문글자가 왼쪽 하단에 보인다. KOICA는 한국국제협력단의 영문이니셜이다. 실크로드를 건너 키르키스탄과 함께하는 국제적 환경협력사업으로 실시한 현장으로 보인다.

박물관에 전시된 부라나 탑의 옛 흑백사진. 1970년대 복구작업 직전의 모습.
박물관에 전시된 부라나 탑의 옛 흑백사진. 1970년대 복구작업 직전의 모습.

◆수많은 나라가 흥망성쇠

탑 위로 올라가는 계단 통로는 좁고 가파르고 캄캄하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풍경은 고역에 대한 보상이 된다. 눈 앞에 펼쳐진 천산산맥의 하얀 만년설은 강력한 뷰포인트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금은 사라진 왕궁터와 옛사람들의 생활 흔적들은 흙 무더기 속에 잠들어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어서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있겠으나 현재는 중단돼 있다.

천산산맥의 하얀 만년설이 눈 앞에 펼쳐진 바라사군 유적지는 수많은 나라가 흥망성쇠한 무대이다.
천산산맥의 하얀 만년설이 눈 앞에 펼쳐진 바라사군 유적지는 수많은 나라가 흥망성쇠한 무대이다.

고분 흔적, 묘표 등 유적지 전체가 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작은 건물도 보인다. 간이박물관 전시물 중에는 시대별 각 민족의 고유문자가 새겨진 석판이 놓여있어 긴 역사의 흔적을 보여 준다.

1218년 도시는 몽골 군대에 의해 점령됐고, 이 지역의 종말을 의미했다. 14세기 이후로 황폐화가 시작했고 수십 년에 걸쳐 많은 지진들이 그 도시에서 남겨진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수천 명의 실크로드 캐러밴들을 영접하며 한때 번성했던 옛터에 이제는 부라나 탑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행정구역상 톡목시에 속하는 바라사군 유적지는 실크로드를 주름잡던 소그드인들이 세운 고대도시였다. 기원전부터 그들의 터전이었다가 6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리되자 그 영향이 중앙아시아까지 파급됐다. 10~13세기에는 위구르 등 투르크계 유목민들에 의해 장악돼 이슬람계 카라한 왕조의 도읍지가 됐다. 부라나 탑을 중심으로 펼쳐진 광활한 초원은 스키타이, 사카, 흉노, 돌궐, 투르크, 몽골 등 수많은 겨레와 나라가 흥망성쇠한 무대였다.

부라나 탑 주변에 발발이라 불리는 석인상들이 서 있다. 미소를 지으며 영원한 삶을 보내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부라나 탑 주변에 발발이라 불리는 석인상들이 서 있다. 미소를 지으며 영원한 삶을 보내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조상을 위한 기념비

당나라에서 인도로 향하던 현장법사는 이식쿨 호수를 지나 쇄엽성이라 불리던 악베심에 도착했다. 대당서역기에는 바라사군 유적지 인근에서 돌궐의 왕과 만나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현장의 쇄엽성 기록에 의하면 당시 돌궐의 지배자는 왕궁을 지어 놓고도 야외의 유르트에 머물러 유목민의 성향을 보였다고 했다. 또 당나라 시인 이백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많은 논란이 있으나 키르기스탄에서는 이백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무역상인 아버지를 따라 촉나라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부라나 탑 주변에는 발발(bal-bal)이라 불리는 석인상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발발이라는 단어는 현지어로 조상, 아버지를 뜻한다고 한다. 이 석인은 돌궐 전사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그 수는 고인이 생전에 쓰러뜨린 적의 수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한편 초기에는 죽임을 당한 적들을 상징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나중에는 그들의 조상을 위한 기념비가 되었다고 한다.

돌궐 전사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발발은 투르크 계열 유목인이 거주하던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돌궐 전사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발발은 투르크 계열 유목인이 거주하던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발발은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나톨리아 지역 초원 등 투르크 계열 유목인이 거주하던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크기는 다양하고 표정도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 손에 컵이나 유리잔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다. 와인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지역에 살았던 초기 기독교 집단인 네스토리아인들의 흔적이라고도 한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마유주' 잔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일대 초원지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의 확산으로 점차 쇠퇴했다. 이후 러시아인들의 정착과 농지화 과정에서 대부분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근세 들어 키르기스스탄 국내 각지에 흩어져 있던 발발들을 모아 한곳에 세워 두었으니 야외박물관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발발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발발들의 크기는 다양하고 표정도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 손에 컵이나 유리잔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다.
발발들의 크기는 다양하고 표정도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 손에 컵이나 유리잔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다.

간혹 미소를 지으며 영원한 삶을 만끽하고 있는 듯한 모습도 발견된다. 한편으로 손 모양에서 제주도의 돌하르방이 연상된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제국의 문화가 제주도로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사실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하기 전에는 발라사군 유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이식쿨 호수로 가는 길목의 부라나 탑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이 도시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중요한지 몰랐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한때 그레이트 실크로드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였다.

다시 길을 떠나면서 한 번 더 뒤돌아 부라나 타워를 바라본다. 수 세기 동안 많은 지진으로 도시는 파괴됐어도 약 1천년 동안 홀로 우뚝 선 부라나 타워에게서 강인한 생존력을 본다. 설산에 둘러싸인 들길을 걸으며 사라진 도시와 옛사람들을 잠시 생각한다.

박순국 언론인
박순국 언론인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sijen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