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선을 허(許)하라

입력 2023-10-04 17:18:48 수정 2023-10-04 18:20:43

이창환 정치부장
이창환 정치부장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등 대통령 5명이 대구경북(TK)에서 배출됐다. 과(過)가 있지만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功)을 가릴 수 없다. 지역민들은 앞으로도 TK에서 대통령과 같은 큰 정치인이 이어지길 바란다.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따져 보면 큰 정치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함돼 있다. 홍 시장이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대구 수성구을 무소속 출마에도 당선된 배경에는 이 같은 기대 심리가 반영됐다.

큰 정치인을 오랫동안 지켜본 보수당 TK 당원들은 정치인의 싹수를 보는 눈도 날카롭고 냉정하다.

국회의원을 향한 기대도 크다. 큰 정치인의 아우라는 아니더라도 존재감을 뿜어 내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의정 활동을 기대한다. 장기적으로 큰 정치인으로 성장해 TK의 자랑이 돼 주기를 바란다.

현실은 사뭇 다르다. 무기력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서 TK 정치권은 무기력했다. 대표 경선에는 참가조차 못 했고, 이만희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 나섰지만 1차 컷오프됐다.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텃밭이고, 당이 어려울 때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지만 정작 주요 국면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TK 의원이 현안을 두고 이슈 파이팅하는 모습도 흔하지 않다. 개인적인 소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슈를 선점하는 다른 지역 의원을 지켜보면 TK 의원 중에도 스타 의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는 TK 의원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경쟁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보수당 공천=당선'이니 유권자보다 정권 실력자에게 잘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TK 정치 문화를 깨부수지 않으면 앞으로 이 지역에서 큰 정치인이 나오기 어렵다.

정치권에 경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본선에서 야당과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역 민심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보수당 내에서 치열한 경선을 통한 경쟁 구도를 제안한다. TK의 25개 선거구(대구 12개, 경북 13개) 전부 또는 대부분 지역에서 치열한 경선을 통해 총선 후보를 결정하자는 얘기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처럼 총선 후보 경선을 치르자는 것이다. 합동연설회를 수차례 열고, 토론회도 개최해 당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합동연설회와 토론회를 거치는 동안 후보 간 실력 차가 드러나고,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당원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운다.

후보자에게는 공천을 받기 위해 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며 읍소하는 것보다 당원들을 상대로 정치 소신과 비전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숨어 있던 인재들이 제 발로 국민의힘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선이 당내 갈등을 부추긴다는 반론도 있지만 문화로 자리 잡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이래야 TK 정치도 산다. 야심만만한 젊은 인재가 공정한 경선을 통해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하는 신선한 장면을 보고 싶다. 공부하고 토론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TK 정치도 미래가 있다.

대통령이 5명이나 배출된 TK에서 앞으로도 큰 정치인이 꾸준히 탄생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선 정치인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비판만 능사가 아니다. TK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