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내 삶을 위한 정치를 원한다

입력 2023-09-25 20:10:49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정치가 퇴폐하면, 백성은 곤궁해지고 나라 또한 가난해지며 세금이 가혹해져, 결국 민심은 이탈하고 천명(天命)이 떠나 버린다." 전남 강진에서 18년 유배 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이 남긴 말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잡고자 했던 다산. 그의 경구(警句)는 '정치적 내전'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정치는 어떤가? '제1야당 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이란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찬성표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겠다고 난리를 친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같은 편끼리 뭉치고, 다르면 내친다. 이른바 당동벌이(黨同伐異)다. '내로남불'은 '개그콘서트' 뺨친다. 정치가 국민을 갈라친다. 갈등을 당리당략에 활용하는 정치가 국민 분열의 원흉이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政者, 正也)이라고 했거늘. 공자가 통탄할 일이다. 지난 5월 한국리서치가 한국 사회 갈등 수준을 조사했더니, '여당과 야당의 갈등이 크다'는 응답이 94%나 됐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에 대한 응답도 92%였다. 그다음 갈등 순위는 ▷부유층과 서민층(88%) ▷기업가와 노동자(88%) ▷정규직과 비정규직(84%)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84%) 등이다.

여의도에는 풍자와 해학이 없다. 선동과 독설만 가득하다. 국민 삶과 동떨어진 공리공론(空理空論)이 판친다. 아수라장이다. '공산전체주의'가 웬 말이고, '토착왜구'가 왜 나오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념 논쟁은 가당찮다. 실용과 실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미사일 쏘는 전쟁보다 무역 전쟁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 내가 하면 복지정책, 네가 하면 포퓰리즘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서로 재를 뿌린다.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없다. 대학입시, 부동산 등 민감한 제도가 자주 바뀐다. 그 피해는 국민이 짊어진다.

대한민국에는 협치와 공존이 없다. 포용과 통합은 사라졌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팬덤과 집토끼 몰이에 골몰한다. 양극단을 달리니, 중간은 아득하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호감도는 각각 30% 안팎이다. 여야 모두 싫다는 무당층은 30%에 이른다. 맹자는 정치의 요체를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고 했거늘, 우리 정치는 '제민독락'(除民獨樂)이다. 국민 없는 그들만의 리그이다.

순자는 '군주는 배, 백성은 물이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고 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기도 한다. 정치가 궤도를 이탈하면, 참다못한 국민이 나서게 된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6개월여 뒤면 22대 총선(내년 4월 10일)이다. 이번 총선에선 정부·여당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 팽팽히 맞설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총선 정국의 최대 변수다. 현재로선 여야 누구도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승부수는 외연 확장이다. 중도층 표심은 민생 정책과 공천 혁신에 좌우된다. 2030세대의 지지도 관건이다. 그들에겐 기후 위기가 주요 이슈이다.

경제는 더 나빠질 전망이다. 정치는 불신을 받고 있다. 진영 싸움, 이념 논쟁에 국민은 탈진했다. 정치는 먹고사는 문제, 미래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은 내 삶을 바꿔 주는 정치를 원한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존 롤스·미국 정치철학자)고 했다. 선거는 단지 사람을 바꾸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국민 열망을 공론으로 만드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