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래의 소야정담(小夜情談)] 21C의 아리랑 고개

입력 2023-09-07 14:30:00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몇해 전 고령에서 '대가야 아리랑'이란 주제로 인문학 강연을 하면서 '아리랑'과 관련한 새로운 추론을 제시한 적이 있다. 먼저 고대의 건국신화 중 하나인 난생설화(卵生說話)에서 아리랑의 유래를 찾는 것이었다. 난생설화란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 나라의 시조가 된다는 내용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과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도 이같은 난생설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바로 이 난생설화에서 '아리랑'의 뜻을 유추한다. 아리랑의 어원 중 '아리'가 알(卵)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다. 고대의 난생설화에서 '알'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었다. 태양을 상징하며 우두머리를 뜻했다. 따라서 '아리랑'은 곧 '알이랑'이란 의미이며 '왕이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아라리요'는 '아프다'는 우리의 옛말 '알흐리요'와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 아라리요'는 '왕과 함께 앓으리요'란 뜻으로 왕과 민중의 일체감을 시사한다. 제정일치(祭政一致)였던 고대에는 나라의 흥망이 백성의 생사와 직결되었다. 망국(亡國)이 초래한 유랑 민중의 심리적 격동과 승화된 한(恨)의 집단 반응이 아리랑을 낳았을 것이라는 학설이다. 한반도 남쪽 낙동강 일대에 번성했던 가야 연맹 왕국은 6C 무렵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나라의 멸망은 '알'(왕)을 잃어버린 민중의 가슴에 한을 축적하며 아리랑(알이랑)의 원시적인 가락을 잉태했을지도 모른다. 고분 속의 유물이 전하는 역사의 흔적은 아리랑에 대한 또다른 추론을 견인한다. 1992년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 유적에서 대가야 토기가 출토되었다. 대가야문화권과는 동떨어진 신라 변방 지역에서 출현한 이 가야 토기에서 학자들은 강제이주 정책의 증거를 확인한다.

당시로서는 머나먼 거리였을 것이다. 망국의 설움을 안고 동해안 북방으로 쫓겨났지만 가야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 등 유물들이 그것을 웅변한다. 1천500년 전의 애틋한 망향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회한의 정서가 아리랑을 잉태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먼 훗날 인근 지역에서 탄생한 정선아리랑의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본 것이다.

우리 겨레에게 '아리랑'은 무엇일까. 아리랑만큼 슬픈 노래가 있을까. 아리랑만큼 흥겨운 노래가 또 있을까. 아리랑은 신비스럽다. 우리는 아리랑의 정확한 어원도 유래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꽃씨와도 같다. 겨레의 발길이 닿는 곳 어디서나 꽃을 피운다. 나아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노랫말과 가락으로 거듭난다. 그런데 아리랑에는 어김없이 '아리랑 고개'가 등장한다.

도대체 우리 민족에게 아리랑 고개는 무엇일까.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고개도 많았다. 그것은 고난과 시련의 역사를 짊어지고 허위허위 넘어가던 눈물의 고개이자, 보다 나은 신세계를 찾아 넘어가려 하던 희망의 고개이기도 했다. 그것은 실존적인 고개였으면서 상징적인 고개이기도 했다. 아리랑 고개는 개인과 민족의 흥망성쇠와 희노애락을 넘나들던 인생고개이자 민족사의 분수령이었다.

아리랑은 정한(情恨)의 표출이다. 민족문학의 저변을 관류하며 곡진한 심사를 절절하게 드러내는 서정가요이다. 아리랑은 저항의 노래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고 민주화운동 때도 그랬다. 민중의 항쟁가였다. 아리랑은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리랑 고개는 피안(彼岸)의 언덕이다. 아리랑은 소박한 삶을 담은 전원(田園)의 노래이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풍자와 해학의 보고(寶庫)이다.

아리랑은 무한 변주(變奏)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느린 가락으로 부르면 한(恨)이 배어들지만 빠른 장단에 맞추면 흥(興)이 솟구친다. 우리나라에 구전하는 아리랑의 종류는 남북한을 통틀어 60여종 3천600여수에 이른다. 지역마다 특유의 아리랑이 있다. 나라 밖에도 한민족의 삶터에는 아리랑이 있다. 그중에서도 3대 아리랑으로는 '정선아리랑'(강원도) '밀양아리랑'(경상도) '진도아리랑'(전라도)을 꼽는다.

정선아리랑은 가락이 느리고 구성지다. 산간 지방의 정서를 담고 있다. 밀양 아리랑은 흥겨운 세마치 장단의 경상도 민요이다. 진도 아리랑에는 한과 흥이 어우러진 남도 특유의 정서적 농도와 예술적인 정취가 녹아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른바 본조(本調) 아리랑은 경기 아리랑의 현대적·창의적 변주곡이다. 일제강점기 나운규의 항일 민족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에서 불꽃처럼 확산된 신민요이다.

아리랑은 겨레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공명(共鳴)이다. 일제에 맞서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던 '광복군아리랑', 독도 수호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홀로아리랑', 국악에 팝을 접목시킨 애절한 발라드곡인 SG워너비의 '아리랑', 붉은악마의 태극기 물결과 함께 온국민을 하나로 묶었던 힘찬 응원가 윤도현 밴드의 '아리랑'... 아리랑은 그렇게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민족의 노래이다.

아리랑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역사의 구비마다 숱한 가락과 갖은 가사를 양산하며 겨레의 가슴 저변을 흘러온 여울이고 너울이었다. 그래서 아리랑을 모르는 한민족은 없다. 아리랑은 겨레의 심장을 이어주는 문화적 탯줄이다. 아리랑은 노래와 민요의 틀을 벗어나 역사와 문학을 담고 영화와 뮤지컬로 거듭난다. 이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상징이요 문화현상인 것이다.

아리랑은 이제 세계인의 노래가 되었다. 방탄소년단(BTS)의 아리랑 타령에 지구촌이 들썩인다. 사상 유래없는 민족 중흥의 어깨춤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과 문화강국의 파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운은 다시 흥망의 기로에 섰다. 사특한 기운이 횡행하는 나라 안팎의 현실이 그렇다. '알'(국권)을 잃어버린 민중의 참상을 우리는 숱하게 경험했다. 21C의 아리랑 고개를 잘 넘어가야 한다.

조향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