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9월 경제위기설’, 과장된 위험이지만…

입력 2023-09-03 19:24:27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폭염이 물러가면 경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곤 한다. 이른바 '9월 위기설'이다. 올해도 그렇다.

사실, 9월에 경제적 변고가 여럿 있었다. 1997년 9월에 우리나라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있었다. 세계 금융 시장을 패닉에 빠트린 9·11테러도 2001년 9월에 벌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과 2015년에 9월 위기설이 나돌았다. 2008년에는 외국인 단기외채 매도 및 환율·금리 급등이, 2015년에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및 중국 경기 불안이 9월 위기설을 키웠다.

'예고된 위험은 위험이 아니다'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빼면 9월 위기설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2023년 한국 경제 9월 위기설 역시 기우(杞憂)로 치부해도 될까? 위기설의 면면을 짚어보자.

위기설의 진원지 중 하나는 코로나19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지원금 9월 만기 도래다. 하지만 이 우려는 과장됐다. 전체 대출 잔액의 92%(78조8천억 원)가 만기 연장(2025년 9월)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위험이 있는 차주(借主)는 1천100명 정도다. 한국 경제를 흔들 만한 악재는 아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은 어떤가. 3월 말 현재 연체율이 2.01%다. 늘어나고는 있지만 2012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연체율(13.62%)에 비하면 걱정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역전세 물량과 보증금 미반환 충격이 9월에 닥치며 그 규모가 24조~300조 원에 이른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정부도 이 사안을 그리 중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9월 위기설은 흰소리일 뿐인가? 9월을 특정한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다. 특히 대내외 경제 환경이 너무 안 좋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사상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졌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 및 원화(貨) 하락을 부를 수 있는 변수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11개월째 내리막이고 생산·소비·투자가 '트리플' 감소세다.

중국 리오픈에 기대를 걸었지만 중국 대형 부동산 업체 디폴트 사태 암초를 만났다. 가계 부채, 고물가 여파로 소비마저 위축되고 있다. 물가를 잡아야 하지만 금리를 올릴 형편이 아니다.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하고 있어 정부가 경기 부양하겠다고 돈을 풀 수도 없다. 국가의 경기 관리 두 축인 통화 및 재정 정책 모두 손이 묶인 셈이다.

'과도한 걱정이 게으른 안심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부 경제팀의 긴장감은 잘 안 보인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가 발표 때마다 바뀌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 상반기는 어렵지만 하반기에 좋아질 것)일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대로라면 내년 경기도 장담 못 할 지경이다.

작금의 경제 상황은 불쏘시개가 산적한 형국이다. 섣부른 우려로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서 안 되지만 그렇다고 낙관론에 안주하다가는 크게 실기(失機)할 수도 있다. 정부의 선제적 위기 대응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정쟁(政爭)을 벌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닌데 정치는 구태를 못 벗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 자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경기 회복을 국정 최우선순위로 올려놓기 바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강성 지지층 결집에 기대는 '방탄용 단식 쇼'를 당장 멈춰야 한다. 노조도 파업하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접어 둘 때다. 경제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